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재호 Sep 16. 2022

닮아서 더 예쁘다.

어제는 외식을 하고 아이와 서점에 들렀다.

둘 다 책 읽는 것을 좋아하기에 서점이 눈에 보이면 

자연스럽게 들어가서 함께 이것저것 구경을 하게 된다.   


신간이 나올 때마다 아이가 사서 읽는 책들이 있다.   


‘푸른 사자 와니니’, ‘설민석의 삼국지 대모험’

그리고 어제 구입한 ‘채사장의 지대넓얕’ 등등.   


샤워를 하면서 머리도 감아야 하고

밀린 문제집도 풀어야 하고

곧 영어 학원 시험공부도 해야 하는데

집에 들어오자마자 손만 씻고 소파에 앉아서 책을 뜯는다.   


그래 30 분 정도만 보겠지.   


집 정리를 대충하고 야구 경기를 보다 보니

어라? 한 시간이나 지났네?   


꾹 참았다가 한 마디 했다.

 “이제 씻고 숙제하고 시험공부해야지?”   


별 대꾸도 없이 책에서 눈을 떼지 않는다.

 “그럼 지금 읽고 있는 데까지만 읽고 나머지는 내일 봐, 알았지?”   


마지못해 알았다고 하는데 시간이 지나도 일어날 생각을 안 한다.

결국은 또 싫은 소리를 하고 욕실로 들여보냈다.


가뜩이나 중요한 시기에 응원하는 팀이 자꾸 져서
속상해하며 텔레비전을 끄고는
아이가 읽다가 덮어 놓은 책을 슥 본다.   


그러고 보니 나도 어릴 때 그랬다.

변변찮은 내 방이 없어 늦은 밤에 내가 책을 보고 있으면

가족들이 불편을 겪어야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가 좋아하는 책들을 기를 쓰고 다 읽고 잤다.

 
그때,

부모님께서는 기특한 마음이 먼저이셨을까? 

아니면 피곤에 지쳐 빨리 등을 끄고 자길 바라셨을까?   


내일 하루 조금 피곤해하더라도 

보고 싶은 책을 맘껏 보게 해 줄걸 하는 후회가 들었다.   


그렇게 씻고 머리를 말리고 툴툴거리며 공부하러 들어가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쪼르르 달려 나와서 아무 말 없이 나를 한 번 안아 주고 갔다.

 
뭔가 싶었는데,
맞다.
연필로 써서 붙여 놓은 나의 사과 편지가 떠올랐다.


이렇게 글을 쓰고 나니 
오늘 아침에 

왜 기분이 그리 좋았는지 

왜 오랜만에 좋은 꿈만 꾸면서 푹 잤는지 이제야 이해가 된다.   


아이가 학교 간 사이에 아이 책을 들고 책상에 앉았다.

나를 닮은 구석이 있어서 더 예쁘다.

매거진의 이전글 사과를 하려면 연필로 쓰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