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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호 Sep 29. 2022

허용 공차

  어떤 제품을 만들기 위해 하는 여러 활동 가운데 도면(설계도)을 작성하는 과정이 있습니다. 도면에는 형상과 치수 그리고 재질 등을 표현을 하게 되는데요.     


  그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치수 옆에 숫자로 조그맣게 기입된 ‘허용 공차’라는 것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하는 일이다 보니, 아무리 정해준 치수에 맞추기 위해 최선을 다 한다고 해도 결코 완벽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제품 외관과 기능에 있어서 문제를 발생시키지 않는 범위 내에 들어오는 치수는 불량품이 아님을 인정해주는 일종의 여유라고 보시면 됩니다.     


  예를 들면, 설계 담당자는 10mm 길이의 제품을 원하지만, 9.8mm~10.2mm까지는 양품(良品)이라고 승인해주는 겁니다.     


  제가 휴대전화를 설계할 때는 그 허용 공차의 기본 단위가 0.05mm에서 0.1mm 수준이었습니다. 민감한 특정 부품은 더 가혹한 공차를 적용했고요. 일상생활에서 그런 단위로 무언가를 측정하는 일이 거의 없을 만큼 작죠. 첫 직장이었고 실질적인 제품 설계가 처음이라 저는 다른 제품군도 그렇겠구나 하면서 지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이직을 하고 이번에는 자동차 부품을 설계하다 보니 1mm 정도는 별문제 없이 허용을 해 주더라고요. 저는 ‘우와 제품이 크다 보니 이 정도까지도 봐주는구나.’ 하면서 놀랐습니다.     


  하지만 진짜 놀라운 일은 그 후에 일어났습니다. 하루는 저와 같이 이직을 한 동료들 중에 조선소에서 온 친구가 자동차 부품 도면을 보며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우와. 조선소에서는 농담 조금 보태서 대충 여기 이 근처에 있으면 된다고 했는데 자동차는 뭐 이리 팍팍하냐.”     


  당황했습니다. 그럴 만하지 않았을 까요?


  휴대전화, 자동차, 대형 선박으로 Size가 커지면서 허용 공차도 함께 커지는 상황을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사람 마음도 그렇겠구나.


  마음이 크고 넓은 사람은 누군가의 실수나 잘못을 대했을 때 여유와 배려로 이해하며 넘어가 줄 수 있는 폭도 크겠구나. 작은 일에 연연하며 자신이 정한 기준에서 조금 어긋난다고 해서 손가락질하고 소리를 지르기보다 조금 더 허용하고 용서해 줄 수 있는 그런 여유 있는 마음과 허용 공차를 가져야겠다.'


  지금도 가끔 제 마음의 크기는 어느 정도 자랐는지 또 허용 공차는 얼마나 넓게 줄 수 있는지 가늠해 보곤 합니다. 옆에 혹은 앞에 있는 사람에게 10을 기대했지만 돌아오는 것이 5일지라도 혹은 15일지라도 대수롭지 않게 여길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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