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_빨래를 하며
집안일 중 빨래는 제가 도맡아서 하는 편입니다.
오늘 아침에도 빨래를 하고, 어제 넣어 놓은 옷들은 잘 개서 각자의 옷장에 넣어 주었습니다.
‘빨래? 그까이꺼 대충 냄새나는 옷 세제랑 한꺼번에 넣고 세탁기 버튼 틱 누르면 되는 거 아니냐?’고 하실 분도 있겠지만, 사실 빨래는 손도 많이 가고 제법 여러 단계로 나뉘어 진행됩니다.
빨랫감 판정 -> 구분 -> 방법 정하기 -> 말리기 -> 개기 -> 넣기
우선 빨랫감 판정은 빨래를 필요로 하는지, 아니면 좀 더 입어도 되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냄새가 배었거나, 음식물이 묻은 경우, 털어지지 않는 먼지가 들러붙은 옷 등등 세탁기에 들어갈 녀석들을 선별하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사람의 마음도 비슷합니다. 지금 내 감정에 귀를 기울이고 꼼꼼하게 살피는 과정을 통해서 조치를 취해야 하는지, 아니면 조금 더 두고 볼지 스스로 판단을 내릴 줄 알아야 합니다.
두 번째 할 일은 구분입니다. 색깔, 옷감, 기능성 여부, 시급성 등을 따져서 함께 할 녀석들을 모으고, 우선순위를 정해서 구분해 놓아야 합니다. 검은색과 흰색을 한꺼번에 빨거나, 울 소재의 옷을 면 소재의 옷들과 함께 일반 세탁을 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내일 당장 입어야 하는 옷이라면 다른 옷들을 전부 재치고 가장 먼저 세탁기 속으로 들어가야겠죠. 마찬가지로 감정 또한 구분을 해야 합니다. 조울증이 생기지 않도록 서로 비슷한 감정 사이에 있다가 자연스럽게 다른 감정으로 넘어가야 합니다. 그리고 바로 처리를 하지 않으면 큰 병이나 화로 발전할 가능성이 보이는 감정은 다른 감정들보다 우선하여 세탁 준비를 해야 합니다. 또한 보유한 세탁기로 감당이 안 되는 빨래는 전문가에 맡기듯이, 감정도 스스로 조절이 불가한 상황이라면 그 역시 전문가를 찾아가셔야 합니다.
구분을 잘 지어놓았다면 그다음은 수월하게 진행됩니다. 일반 세탁으로 할지, 울 드라이로 할지, 아니면 기능성 의류로 할지 세탁기의 설정만 잘해 주면 됩니다. 물론 거기에 맞는 세제도 알맞게 넣어야겠죠. 빨랫감을 마음의 병이라고 치환한다면 지금부터는 치료가 시작됩니다. 현재 느끼는 마음 상태에 맞는 약을 쓰는 것입니다. 자연적으로 치유가 되지 않는다면 인위적으로 보살피고 적절한 방법을 통해서 다시 평정심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관여를 해야 합니다.
말리기에 돌입하면 그때부터는 시간과 환경에게 도움을 받습니다. 제가 할 일은 잘 털고, 잘 펴서, 잘 널어주기입니다. 그렇게만 하면 나머지는 바람과 햇살과 시간이 알아서 물기를 가져갑니다. 이 단계에 있는 마음 역시도 주변 환경이 중요합니다. 마음이 치열하게 싸우는 중인데 거기다가 더 힘든 무언가를 끼얹어서는 안 되겠죠. 장마철에 빨래를 왕창 널어 넣고 빨리 마르기를 바라고 있으면 그게 될 일입니까? 그래서 빨래를 하기 위해서는 항상 날씨를 살펴야 합니다. 마음이 흘린 눈물을 말리기 위해서는 주변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햇살이 되고 시원한 바람이 되어줄 존재에게 손을 내밀어 보세요. 꼭 사람이 아니더라도 산책을 한다거나 영화 감상 등 본인에게 맞는 환경을 만들어 보세요. 건조기도 좋겠지만 자연스럽게 마른빨래가 저는 더 좋더라고요.
자, 이제 마지막 단계로 개서 넣기입니다. 깨끗해지고 뽀송뽀송하게 마른빨래를 보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마음의 치유도 끝나가는 거죠. 그렇다고 방심해서는 안 됩니다. 엄마의 옷을 아이의 옷장에 넣어서도 안 되고, 양말 넣는 곳에 속옷을 넣어도 안 됩니다. 감정을 마무리하고 정리하는 좋은 방법 중 하나는 글을 쓰는 것입니다. 일기도 좋고 그냥 끄적이는 것도 좋습니다. 그렇게 글을 통해서 감정을 깔끔하게 정리하시길 추천해드립니다. 나중에 비슷한 감정을 세탁할 때 큰 도움이 되실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