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by 김재호

삐딱하게 되바라진 양은사발 속 그늘

어제의 비밀 눌어붙은 눈물자국이 비릿하다.

눅눅한 가면 벗으며 몰려드는 손님, 발님, 개님

삐죽빼죽 모난 하루가 땀 냄새에 일그러지고

탁주에 자리 빼앗긴 여우, 곰, 토끼

핑계 묻은 공동묘지가 성황이다.


카타르시스도 식후경이지.

곱게 펼쳐진 초록의 밭에 켜켜이 들어찬 고깃배

텅 빈 뱃속 뱃놀이, 바싹 마른 핏줄 속 살풀이.

넘실넘실 갓난아기 어르듯 불꽃 키우다

시큼한 연기 코로 뿜어대며 펑펑

불꽃놀이, 불타는 밤의 화원(花園).


비어버린 사발은 씨발이지만

밤은 깊고 사발은 얕으니 용서는 당연지사.

둥근 술, 둥근 시간, 둥근 테이블

모난 데 없어 서로 함께 굴러가니

어김없이 그 자리로 돌아가야 옳다.

어느새 뽀송뽀송 말라버린 가면을 쓰고

여우, 곰, 토끼가 사는 굴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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