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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호 Jan 15. 2023

편하게 앉아서 하는 고정관념 파괴

우리는 알게 모르게 많은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보고 듣고 행하며 자연스럽게 굳어버린 행동 방식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무한하게 증식하거나 거르는 과정 없이 무턱대고 대물림되지는 않습니다. 세대가 바뀌면서 굳건했던 생각과 행동의 틀이 무너지는 것을 종종 보곤 하니까요.     


저에게도 그런 일이 하나 있었습니다.

소재는 다소 깨끗하지 않을 수 있으나, 주제는 건전하니 걱정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시작은 일 년 남짓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욕실 청소를 하던 아내가 계속 구시렁거립니다. 무슨 일인가 싶어서, 도움이 필요한 가 싶어서 쓱 문을 열었더니 변기를 닦고 있더군요.     


“앞으로 변기는 ‘무조건’ 오빠가 청소해! 알았지?”     


가끔 제가 하기도 하지만, 욕실 청소가 열에 아홉 번은 아내의 몫이었기에 불만이 터져 나온 겁니다. 은근슬쩍 자리를 피하려고 했는데 등 뒤에 바싹 따라오는 Fact 폭격.     


“우리 세 명 중에 변기를 가장 더럽게 만드는 사람은 바로 오빠야!”     


맞습니다. 제가 주범이었죠.      


가장 큰 원인은 

a.k.a. ‘서서 쏴’          


그날 이후로 제가 청소하는 빈도수도 조금 많아졌지만, 이제는 아내도 청소를 하면서 별 말이 없습니다.     


‘앉아 쏴’라는, 

한 번도 생각해 보거나 시도해 본 적도 없는 자세로 ‘교정’을 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처음에는 너무 어색했죠. 기저귀를 떼고 나서부터 서서 일을 봤으니, 사십여 년 간 차곡차곡 쌓아온 습관과 익숙함에서 벗어나기가 어찌 쉬웠겠습니까?     


심지어 여자가 된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하고, 자괴감이 들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고,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얼마 후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넌지시 말을 꺼내봤습니다.     


“야. 요즘 집에서 앉아서 소변(오줌이라고 표현했지만) 보는 남자들이 있다며?”     


둘은 어이없어하고, 평소 언변이 솔직하고 거침없는 한 녀석은 자기는 거의 10년 전부터 실행(?^^)에 옮겼다고 하더군요.     


이야기가 길어지지는 않았지만, 네 명중에 두 명이라는 생각이 드니까 조금 편안해졌습니다.               




남녀공학인 중고등학교를 다녔기에 여전히 연락을 주고받는 여자 친구들도 제법 있습니다. 그녀들에게 공손히 여쭈었죠.      


너희 집 남자들의 자세는?     


헉. 남편과 아들들 포함해서 상당히 많은 수의 남성들이 이미 이 운동에 반강제적으로 동참하고 있더군요.     


하지만 여전히 이렇게 말하는 남편도 극히 일부지만 존재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너도 그럼 서서 싸라.”     


농담이시겠지만, 신념이 참 굳건하십니다.               




몇 년 전부터 주방에는 얼씬도 하지 않으시던 아버지(아빠)가 종종 주방에 가십니다. 어머니(엄마)가 그러시더군요. 이제는 라면도 알아서 끓여 드시고, 가끔이지만 설거지도 하신다고. 소변보는 자세에 대한 궁금증은 차마 꺼낼 수가 없어서 그냥 묻어 두었습니다.     


서서 일을 보면 확실히 시간도 절약되고 꽤 편합니다. 그리고 사회 인프라도 이미 그렇게 많이 갖추어져 있고요. 그것을 다 없애자는 말은 아닙니다.      


합리적이라고 생각되시면, 한 번 앉아보세요. 다리도 아프지 않고 편합니다. 청소하는 주기가 짧아져서 물도 절약됩니다. 소음도 적습니다. 술 취해서 오조준을 하는 일도 사라집니다. 그리고 고정관념이 조금이나마 깨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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