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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호 Mar 12. 2023

너희 모두가 예쁜 원석이란다.

반장 선거

교실 앞문(전용 문)이 열리면서 선생님이 들어오신다.


“반장.”


“차렷, 선생님께 경례.”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그래 좋은 아침. 반장, 어제 자율학습 시간에 떠든 놈들 이름 가지고 와.”


보통 수업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야 거기, 줄이 삐뚤잖아. 앞사람의 앞사람을 잘 보라고.”


조회시간에 반장은 같은 반 친구들 무리에 섞여있지 않고, 선생님과 우리들 사이에 당당히 혼자 서있었다. 월요일 조회시간의 풍경이었다.




"반장"

"반장"

"반장"

반장은 이름이 있었음에도 우리와 다르게 항상 반장이라고 불렸다.



  옛날이야기입니다. 옛날이야기를 한다고 옛날 사람이 되는 건 좀 억울합니다. 따지고 보면 그리 옛날도 아닌데 말이죠. 오늘은 최근에 브런치 글에서도 자주 보게 되는 ‘반장’에 대해서, 그중에서도 ‘반장 선거’에 대한 허름하고 축축한 제 생각을 하얀 종이에 좀 널어 볼까 합니다. (밖에 비가 와서 잘 마를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학교에서 반장 선거는 왜 하는 걸까요? 반장을 뽑아야 하는 이유가 뭘까요?



  우선, 교사의 입장부터 본다면 일종의 비서로 두려는 목적이 아주 조금은 있지 않을까요? 부정적인 의미 말고 학급 운영에 있어서 아이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반영하기 위한 중간자적 위치의 조력자가 있다면 분명 도움이 되겠죠. 예전에는 잔심부름도 도맡아 하고, 청소 상태 점검이며 교실 환경미화까지 주도적으로 했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다고 들었습니다.


  두 번째는 학부모 차례입니다. 학기 초, 자녀가 반장이나 부반장이 된 부모님들은 상당히 뿌듯해하며 여기저기 은근슬쩍 말을 꺼냅니다. 우리 아이가 그래도 남들 아이보다 조금 낫다는 생각을 가지면서 말이죠. 하지만 단지 몇몇 부모님 기분 좋으시라고 (나머지 부모님은 좀 서운......) 반장을 뽑는 것은 당연히 아니겠죠. 이유야 어떻든 학부모 입장에서는 대견해합니다. 대외적인 자랑거리가 되는 것이죠.

  

  세 번째는 교육적인 측면입니다. 거창하게(사실 거창할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지만) ‘정치’라는 학습 목표 아래 선거 활동과 투표를 통한 민주주의 체험을 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딱히 정해진 R&R도 없고, 약간의 인기투표와 비슷한 유형으로 진행된다는 점에서 다소 안타깝습니다. 시점 상 후보자들의 면면을 살펴보고 경험해 볼 기회가 부족한 상태에서 투표가 진행되니까요.


  그럼 학생들은 어떨까요? 반장이 되고 싶어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처음에도 언급했듯이 같은 학급 친구들과 다르다는 희귀성(이건 저와 같이 사는 아이의 표현이었습니다.)을 갖게 된다는 것이겠죠. 개성과는 또 다른, 반장이라는 직책을 부여받으면서 생기는 차별성. 인정받고 싶어 하는 본능적 욕구 충족까지 포함해서 말입니다. 반장이 되면 어떤 일들을 하겠다, 어떤 식으로 반을 위해 봉사하겠다, 선생님을 도와서 어떤 반을 만들겠다 등등 다양한 공약들이 난무하겠으나 과연 초등학생이 그런 의지와 목적을 가지고 반장 선거에 출마할지 의구심이 듭니다.(일반화를 시키려는 것은 아닙니다.)



  현실로 돌아와서, 지난주 금요일이었습니다. 

아이가 부반장이 되었다면서 학교에서 돌아왔습니다. 반장이 되지 못한 ‘큰’ 아쉬움과 부반장이 된 ‘작은’ 기쁨이 함께 공존하는 표정으로.


“왜 그렇게 반장이 되고 싶었던 거야?”


“반장은 '희소성'이 있으니까. 반에 단 한 명뿐이잖아.”


‘너희 모두가 원석이란다. 거기에 잠시 일회용 스티커를 붙인다고 해서 더 좋은 보석이 되는 것이 아니고, 스티커가 없다고 해서 소중한 존재가 아닌 것이 아니란다.’ 


  저 역시도 그 시절에는 몰랐으니 생각의 전환을 강요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사실 저도 부모로서 부반장이 된 자녀를 보며 기분이 좋긴 했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반장 선거를 꼭 해야 되나 싶습니다. 윗글에서 ‘반장 선거’와 연관된 분들을 하나씩 고려해 보았지만, 딱히 효용성을 찾지는 못하였습니다. 교육적인 측면이라면 따로 학습 목표에 맞는 수업을 하면 되겠죠. 반을 위해 봉사하고 싶은 학생은 선생님과 친구들을 도와주며 자발적으로 실천에 옮기면 될 것이고요.


  노파심이겠지만 어쩌면 학기 초마다 이런 이벤트를 통해서 계급, 권력, 인기, 완장 등에 대한 무의식적 추종을 주입하고 있는 것은 아닐지 살짝 걱정스럽습니다.




(사진 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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