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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호 Mar 13. 2023

난 운은 좋은데 실력이 부족해.

아이는 오늘도 열공 중

  

  같이 사는 아이는 요즘 ‘열공’ 중입니다.

부도 나름대로 착실히 하고 있지만, 오늘 이야기할 ‘열공’은 ‘열심히 공부’가 아니라 ‘열심히 공기’입니다.


  

  학교에서 쉬는 시간 틈틈이, 아이들끼리 삼삼오오 바닥에 모여 앉아서 공기놀이를 한다고 하더군요. 놀이문화를 꼭 세대와 결부시킬 이유는 없겠으나, 갑자기 공기놀이라니 좀 뜬금없긴 합니다. (날이 더 풀리면 고무줄놀이도 권유해 볼까요?^^)


  지금도 어리지만 더 어릴 때 몇 번 엄마와 아빠를 따라서 공기를 따라 해 본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실 그게 처음 하는 입장에서는 상당히 어려운 놀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금방 포기하고 말더군요. 주변에 더 흥미진진하고 자극적인 것들이 널려있는데, 고작 다섯 개의 작은 공깃돌로 하는 게임길게 관심을 둘 리도 없었고요.


  그런데 경쟁심 때문인지, 아니면 친구들 틈바구니에 끼어서 함께 어울려 놀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실력이 필요했는지 틈만 나면 거실 매트 위에 앉아서 공깃돌을 던지고 줍고 받습니다.


  여전히 쉽지 않죠.  다 자라지 않은 손의 크기와 아직 예민하고 민첩하게 반응하지 못하는 손놀림은 잦은 실수를 선사합니다. 그래도 그런 반복적인 실수가 없다면 능숙해질 수 없다는 것을 이제는 알만한 나이가 되었는지 묵묵히 집중합니다.


  떼구루루.


  받아내지 못한 공깃돌이 매트 밖으로 굴러나갑니다. 그 모습을 보며 아이가 내뱉는 말이 주말 동안 잔잔하던 제 마음속에 공깃돌이 되어 퐁당거립니다.


“난 운은 좋은데, 실력이 부족해.”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2단계를 하려고 공깃돌을 펼쳤는데 이런 모양으로 잘 모아졌더랍니다. 그런데도 실패를 하고 만 것이죠.


예쁘게 모인 공깃돌 (2단계)


  아이가 던진 공깃돌이 생각의 물결 일으킵니다.    


  어쩌면 행운은 항상 우리 주변을 맴돌고 있을지 모릅니다. 기회라는 다른 이름으로 말이죠. 작가가 되기 위해 열심히 글을 쓰는 사람에게 ‘공모전’은 기회이자 행운입니다. 행운이라고 감히 부를 수 있는 이유는 공모전은 작가지망생의 의지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대신 그것도 열심히 준비를 해주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풀들이 뒤섞여 있는 수풀 속에 '네잎클로버'가 분명히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에 행운입니다. 그리고 그 행운(혹은 기회)을 잡으려면 물론 실력이 뒷받침되어야 하겠죠. 실력이 없다면 기회는 그저 한낱 희망고문이거나 근거 없는 기대로 삶을 괴롭힙니다.


  반대로 출중한 실력을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내보이거나 성과를 거둘 수 있는 기회가 없다면 어떨까요? 작가지망생이 대문호와 비등한 글 솜씨를 지녔지만 ‘공모전’은커녕 글을 올릴만한 플랫폼도 존재하지 않는다면 정말 불행하겠죠.


  곰곰이 기억을 꺼내보면, 제가 사소한 것일지언정 무언가를 이뤘다고 말할 수 있는 것들은 언제나 그랬습니다. 잡을 준비를 충분히 했기에 행운의 기회가 다가왔을 때 놓치지 않을 수 있었던 거였죠.

   

  아이는 또 연습을 합니다. 친구들 앞에서 행운이 깃든 공깃돌을 마주했을 때, 멋지게 잡아내며 환하게 웃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런 아이를 말없이 지켜봅니다.

행운이 왔을 때 스스로의 실력으로 당당하게 잡아낼 수 있길 기도하면서. 그리고 꼭 이렇게 외치길.


"아빠! 나는 운도 좋고, 실력도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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