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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호 Mar 10. 2023

비바람에 나뒹굴던 오만 원권 두 장

오랜만에 경찰서에


산책 겸 아이(초5)를 학원에 데려다주고 오는 길에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다. 우산이 없었기에 외투에 달린 모자를 썼다.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재촉하는 중에 다급해 보이는 할머니가 나를 붙잡더니 OO병원을 찾고 있는데 도저히 어딘지 모르겠다고 하셨다. 휴대전화로 검색을 해보니, 찾으시는 병원이 바로 눈앞에 보이는 건물 8층이어서 그렇게 알려드렸다. 집으로 바로 갈까 하다가 비 오는 날 빠질 수 없는 막걸리를 산 후 가게에서 나오는데 빗줄기가 조금 더 굵어졌다.


여러 해 동안 살고 있는 동네이다 보니 횡단보도 초록불이 언제 켜질지 예측이 가능하기에 거의 뛰다시피 걸었다. 그렇게 집에 거의 다 도착할 때쯤 길에 떨어진 노란 종이가 보였다. ‘누가 바닥에 쓰레기를.......’이라는 생각이 채 마무리되기도 전에 알아봤다. 그건 바로. 두둥.


오만 원권 지폐 두 장이 비바람에 나뒹굴고 있었다.


나는 홀린 듯 다가가서 한 장 또 한 장 주워 들었다.


'이게 웬 횡재냐. 할머니께 길 알려드린 대가치고는 너무 과분한데.'


손으로 대충 털어서 주머니에 쏙 넣었다. 그리고 집에 들어와 돈을 살펴봤다. 혹시 아이들 장난감으로 제작된 모형 지폐이거나 소품으로 쓰는 가짜 돈일 수도 있기에 구석구석 꼼꼼하게.


진짜 오만 원권이었다. 십만 원이 매우 큰돈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적지도 않은 돈이다. 이거로 뭘 할까 고민을 했다.


'소고기 사 먹을까? 아이한테 용돈으로 줄까? 아내한테 오다 주웠다면서 쓱 건넬까?'


그런데 갑자기 불편하다. 잃어버린 사람 입장을 고려해 보니 씁쓸하다. 내 것이 아닌데 가져왔다는 사실이 도둑질을 한 것 마냥 기분을 깎아먹었다.


'다시 그 자리에 갖다 놓을까? 아니지, 그러면 나 같은 사람이 또 생길 텐데. 아파트 단지 내에서 줍지는 않았지만 경비실에 그냥 맡길까? 아니지, 그럼 괜히 경비아저씨께 책임을 전가하면서 일을 떠넘기는 거 같잖아. 가뜩이나 하실 일도 많을 텐데. 그렇지, 이럴 때는 검색이 최고지.'


경찰서에 찾아가란다. 도서관에 가는 길에 봤던, 걸어서 15분 거리의 지구대가 떠올랐다. ‘오늘은 늦었으니 내일 꼭 가져다줘야겠다.’고 생각하며 봉투를 찾아서 돈을 일단 넣어 두었다.


“아빠, 흘린 사람이 실수한 거니까 그냥 아빠가 가져도 되는 거 아냐?”


“당신은 왜 주워 와서 일을 만들어? 그냥 못 본 척 두고 오지.”


아내와 아이는 저녁 식사를, 나는 막걸리를 마시는 동안 그 십만 원은 대화의 주제가 되어서 설왕설래가 이어졌다.



     

다음 날,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오자 물어봤다.


좀 있다가 아빠하고 경찰서 갈까?


경찰서로 걸어가는 동안에도 아이는 여전히 아쉬워했다. 실수를 했으니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는 것이 당연하다고 하며 전날 했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그래서 물어봤다.


“네가 아끼는 목걸이가 끊어져서 어딘가에 흘리고 왔다고 하면, 넌 어떨 거 같아?”


“찾아보고 없으면 그러려니 해야지. 슬프겠지만.”


“그런데 혹시나 하는 생각에 경찰서에 전화해서 물어봤더니, 누군가가 주워서 가져다줬다면서 경찰아저씨가 찾아가라고 한다면?”


“그럼 좋긴 하겠지만, 아무튼 잃어버린 사람이 잘못한 거잖아.”     


어느덧 경찰서에 도착해서 경찰관에게 사정을 설명했더니 문서를 하나 작성하라며 종이 한 장과 볼펜을 주었다. 더불어 6개월이 지나도 주인이 나타나지 않으면, 국고로 귀속되거나 취득자에게 권리가 넘어간다면서 선택을 하라고 하길래 나는 내가 갖겠다고 했다.


아이는 그 말을 듣더니 기분이 좋아졌는지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앞으로 우리 바닥에 주인 없는 물건이나 돈이 보이면 그냥 그대로 두자. 혹시 얼떨결에 주웠다면 오늘처럼 경찰서에 갖다 주고. 그리고 소중한 물건 잃어버려서 못 찾을 때는 경찰아저씨한테 물어보는 거야. 알았지?


“응. 알았다고. 그런데 아빠. 주인이 찾아가면 좋겠지만, 만약에 6개월 후에도 주인이 안 나타났다고 연락 오면 그 돈 나 주라.


요즘 문제집을 사서 '모으더니' 용돈이 부족한가 보다.


“하하. 그래. 알았어. 그리고 우리 여기까지 같이 온 김에 엄마 오시라고 해서 마라탕이나 먹을까?”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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