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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호 Mar 09. 2023

알고 있다고 여겼으니까.

'축지법'의 진실


어릴 때 들었던 말이라서, 한자를 모를 때부터 쓰던 단어라서 ‘축지법’을 그냥 빠른 속도로 걷는 일종의 경보(혹은 경공술?) 같은 것으로 여겼다.


짧은 보폭을 내딛고 재빠르게 또 내디뎌 마치 발이 땅에 닿지 않고 공중을 떠다니는 듯 오묘한 움직임.


순진했던 시절, 발이 빠른 친구를 볼 때면 혹시 축지법을 쓰는 거냐고 물었다.


나도 그렇게 빨리 걷고 싶었다. 빨리 달리는 것보다 더 멋지게 보였다. 다리를 높게 쳐들거나 팔을 마구 흔들지 않으면서 사사삭 땅 위에서 미끄러지듯이 움직이는 모습이 우아해 보였다. 몇 번 연습을 해 봤지만 우스꽝스럽게 보이기만 하고 잘 되지 않았었다.


그런데 40여 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뒤늦게 '축지법'의 진실을 알았다.


“아빠, 축지법이 뭔지 알아?” 


“응. 알지. 엄청 빨리 걷는 거.”


“엥? 그거 아닌데. 거리를 줄이는 거야. 땅을 주름지게 만들어서 여기와 저기를 지금보다 가깝게 만들고 같은 걸음에도 빠르게 멀리 가는 거야.”


“그래?” 


축지법 (縮地法)

: 땅을 줄여서 먼 거리를 가깝게 하는 술법 (출처 : DAUM 사전)     


한자의 의미를 생각해 보니 그렇다. '축지법'을 이용해서 '이곳과 저곳의 거리를 줄인 후' 걸으니 주변 사람들 눈에는 마치 빨리 이동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었다. 결과는 비슷해 보이겠지만, 그저 빨리 걷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접근이다.


여태까지 아무 생각 없이 단어를 쓰기만 했지, 제대로 된 의미를 알아볼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


이유는 단 하나.

'알고 있다'라고 여겼으니까.


빨리 걷기라는 의미가 사라지자, 웜 홀, 순간이동, 상대성 이론 등등 다양한 단어들이 이어서 떠오른다.


분명 '축지법'처럼, 예전부터 그냥 알던 것들이라 딱히 그 뜻을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그냥 쓰는 말들이 제법 있을 것 같다.


예를 들면, '애물단지'의 기본 의미는 ‘어린 나이에 부모보다 먼저 죽은 자식의 유해를 묻은 단지(출처 : DAUM 사전)’인데 이 역시도 몇 년 전에 새로이 알게 되었고 그 후로 쓰기 기피하는 단어 목록에 추가하였다.


내가 알고 있다고 해서 아는 것이 아닐 수 있다. 


'아예 모르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이 '어설프게 혹은 잘못 아는 것'이니 항상 잘 피해 다니며 살아야겠다.





(사진 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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