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릿속 낡은 서랍을 열 수 있는 열쇠

by 김재호


지난달 다녀온 여행지(태안 안면도)에서 아이가 한참을 고르고 골라 가져왔던 조개껍데기를 이제야 정리를 합니다. 분명 아이가 가져가고 싶다고 했는데 왜 제가 곳곳에 묻어있는 모래를 털어내고 물티슈로 닦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놔두기엔 자꾸 발에 차이고 청소할 때마다 걸리적거려서 어쩔 수 없습니다.


조개껍데기.jpg 꽃지 해수욕장에서 아이가 들고 온 조개껍데기 일부


그러고 보면 저도 예전에는 여행을 갈 때마다 그곳에 대한 기억을 떠올릴만한 기념품을 한 두 개 정도는 구입을 하거나, 법적인 문제가 없는 선에서 작은 것들을 가지고 오곤 했습니다. 가끔이지만 지금도 유리장 안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추억의 파편들을 보면서 나머지 조각들도 하나 둘 맞춰보곤 합니다. 비록 전체 그림을 완벽하게 완성하지는 못하지만, 조각 주변으로 형상이 맞는 직소 퍼즐을 하나 둘 끼워 넣다 보면 형태나 분위기를 떠올리기에 충분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처치 곤란할 때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사를 할 때나, 대청소를 할 때마다 쓸데도 없는데 공간만 차지하고 있으니 괜히 모아놓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어 싹 쓰레기봉투에 넣어버릴까 하는 유혹에 빠집니다. 미니멀리즘까지는 비할바가 못되지만 너저분하게 물건들이 산재해 있는 것을 좋아하지 않거든요. 그렇게 유혹이랑 어깨동무를 하고 유리장을 활짝 열어젖힙니다. 오늘은 꼭 너희들과 작별 인사를 하리라 마음속으로 외치면서. 하지만 꺼내는 족족 줄줄이 실패합니다.


‘아, 이건 신혼여행 때 몰디브에서 산 건데 그래도 이건 가지고 있어야지.’


‘어? 일본여행 갔을 때 더워서 엄청나게 고생했었는데. 이거 보니까 생각난다.’


‘휴양지 좋아하는 나 때문에 주로 이런 곳들만 다녔었구나.’


'가족끼리 제주도 갔었을 때, 나하고 장난치다가 아이가 바닷물을 엄청 먹었었지. 지금도 미안해지네.'


‘아이와 처음으로 갔던 해외여행이었는데, 이건 남겨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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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쓰레기봉투 안에는 아무것도 들어가지 않고 손에 묻은 먼지만 털어냅니다.


머릿속에는 수많은 추억과 기억이 쌓여있지만, 어느 서랍에 들어있는지 몰라서 꺼내보지 못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쌓여 가면서 하나 둘 묻히고 흐려지다가 영영 소실되는 경우도 생기겠죠. 그럴 때를 대비해서 조금 귀찮더라도 당분간 그냥 둬야겠습니다. 머릿속 낡은 서랍을 열 수 있는 열쇠의 역할을 할 테니까요.


그나저나 이 조개껍데기들은 또 어디다가 둬야 할지 모르겠네요. 그리고 다음부터는 한 두 개만 허락해 줘야겠습니다. 이렇게 매번 가져오게 뒀다가는 집안이 아이의 추억 조각으로 가득 찰지도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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