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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호 Mar 17. 2023

머릿속 낡은 서랍을 열 수 있는 열쇠


  지난달 다녀온 여행지(태안 안면도)에서 아이가 한참을 고르고 골라 가져왔던 조개껍데기를 이제야 정리를 합니다. 분명 아이가 가져가고 싶다고 했는데 왜 제가 곳곳에 묻어있는 모래를 털어내고 물티슈로 닦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놔두기엔 자꾸 발에 차이고 청소할 때마다 걸리적거려서 어쩔 수 없습니다.


꽃지 해수욕장에서 아이가 들고 온 조개껍데기 일부


  그러고 보면 저도 예전에는 여행을 갈 때마다 그곳에 대한 기억을 떠올릴만한 기념품을 한 두 개 정도는 구입을 하거나, 법적인 문제가 없는 선에서 작은 것들을 가지고 오곤 했습니다. 가끔이지만 지금도 유리장 안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추억의 파편들을 보면서 나머지 조각들도 하나 둘 맞춰보곤 합니다. 비록 전체 그림을 완벽하게 완성하지는 못하지만, 조각 주변으로 형상이 맞는 직소 퍼즐을 하나 둘 끼워 넣다 보면 형태나 분위기를 떠올리기에 충분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처치 곤란할 때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사를 할 때나, 대청소를 할 때마다 쓸데도 없는데 공간만 차지하고 있으니 괜히 모아놓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어 싹 쓰레기봉투에 넣어버릴까 하는 유혹에 빠집니다. 미니멀리즘까지는 비할바가 못되지만 너저분하게 물건들이 산재해 있는 것을 좋아하지 않거든요. 그렇게 유혹이랑 어깨동무를 하고 유리장을 활짝 열어젖힙니다. 오늘은 꼭 너희들과 작별 인사를 하리라 마음속으로 외치면서. 하지만 꺼내는 족족 줄줄이 실패합니다. 


  ‘아, 이건 신혼여행 때 몰디브에서 산 건데 그래도 이건 가지고 있어야지.’


  ‘어? 일본여행 갔을 때 더워서 엄청나게 고생했었는데. 이거 보니까 생각난다.’


  ‘휴양지 좋아하는 나 때문에 주로 이런 곳들만 다녔었구나.’


  '가족끼리 제주도 갔었을 때, 나하고 장난치다가 아이가 바닷물을 엄청 먹었었지. 지금도 미안해지네.' 


  ‘아이와 처음으로 갔던 해외여행이었는데, 이건 남겨둘까?'   

 



  결국 쓰레기봉투 안에는 아무것도 들어가지 않고 손에 묻은 먼지만 털어냅니다. 


  머릿속에는 수많은 추억과 기억이 쌓여있지만, 어느 서랍에 들어있는지 몰라서 꺼내보지 못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쌓여 가면서 하나 둘 묻히고 흐려지다가 영영 소실되는 경우도 생기겠죠. 그럴 때를 대비해서 조금 귀찮더라도 당분간 그냥 둬야겠습니다. 머릿속 낡은 서랍을 열 수 있는 열쇠의 역할을 할 테니까요.


  그나저나 이 조개껍데기들은 또 어디다가 둬야 할지 모르겠네요. 그리고 다음부터는 한 두 개만 허락해 줘야겠습니다. 이렇게 매번 가져오게 뒀다가는 집안이 아이의 추억 조각으로 가득 찰지도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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