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품 생산 라인에 가면 턱턱 불량품을 잘 골라내는 분들이 계신다. 빠르게 흘러가는 컨베이어 벨트 위를 계속 집중해서 보는 것 같지도 않은데, 스쳐가는 눈길에도 여지없이 불량품들이 걸러진다. 소위 달인이라고 불릴 경지에 다다른 것인지, 편안한 표정에는 여유마저 넘친다. 시력이 남다르지도 않을 테고, 특수한 안경을 끼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혹시 다른 사람들은 가지지 못한 특별한 감각을 하나 더 보유하고 계실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 작은 흠을 그렇게 바로바로 찾아내는 것을 설명할 방법이 없다. 게다가 그런 분들은 손도 빠르고 정확하다.
범죄 현장에서 증거를 수집하는 경찰도 그럴 것 같다. 일상을 떠다니는 온갖 부유물들 중에서 결정적인 단서가 될 만한 것을 누구보다 빨리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증거가 훼손되는 일이 없이 세심하게 다룬다. 그 역시 남다른 감각 덕분이라 여겨진다.
흠...... 남다른 감각이라.
선천적으로 물려받았다고 하기엔 샘이 난다. 나에겐 기회가 없다는 뜻이니까. 그러니 후천적으로 얻은 결과라고 믿어버리자. 그러자면 또 반복이라는 굴레를 벗어나기 힘들어지겠지만. 사실 어느 길로 걷든 마주하게 되는 것이 반복의 벽이니까 낯설지는 않다. 발로 툭 걷어차면 도미노처럼 알아서 연쇄적으로 쓰러져주면 좋겠으나, 세상에서 그렇게 쓰러지는 경우는 내가 아끼는 것들이 넘어질 때나 해당된다.
돌고 돌아서 생각해 보니 무언가를 잘 찾아내려면, 긴 시간 동안 그것의 특징을 잘 관찰하고 횟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꾸준히 노력을 해야 비로소 잠자던 감각이 솟아나리라. 제3의 눈이 열리듯이.
그렇다면 사람들에게서 좋은 점을 찾아내는 것은 어떨까?
사회생활을 하면서 칭찬을 칭찬답게 하는 사람을 만나기란 하늘의 별 따기보다 아주 조금 쉬운 정도였다. 텔레비전을 통해서 맛에 대한 표현은 자주 접하곤 하는데, 칭찬은 따로 배운 적이 없으니 막상 하려고 하면 난감하다. 비단 사회생활뿐이겠는가, 가족끼리 혹은 친구끼리도 칭찬을 잘 하지 않는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더 어색하게 느껴진다. 손발이 오그라든다는 표현을 수식어로 붙여가면서 정말 가끔 하긴 하지만, 빈도수가 너무 적고 휘발성이 강하다. 그러다 보니 누군가에게서 장점이나 긍정적인 부분을 발견하고, 그것을 드러내 언급하는 일이 어렵게만 느껴진다.
오히려 나도 모르는 사이에 흠을 잡아내는 것에 익숙해졌는지, 아니면 날 때부터 가지고 있었던 능력(나쁜 것은 물려받았다는 핑계가 편하니까)인지 모르겠지만 칭찬보다는 비난이나 험담이 압도적으로 잦다. 이쪽으로는 제3의 눈이 이미 개안(開眼)을 했나 보다. 이런 능력 또한 따로 배운 적이 없으니, 보고 듣고 체험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터득된 거겠지.
나는 바닷속 고래까지 춤추게 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같이 사는 아이가 그리고 최소한 내 주변사람이라도 기뻐서 춤을 추는 모습을 보고 싶다. 내 말 몇 마디로 그렇게 만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마법 같은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조금 더 욕심을 부리자면 그들도 누군가를 춤 출수 있게 되길 희망한다.
여기저기 칭찬에 대한 조언을 찾아서 정리해 보면 이렇다. '구체적이고 직접적이며 과장이 없는 진실된 칭찬을 그 즉시 하라.' 하지만 정작 입에서 나오는 칭찬은 고작해야 이 정도 수준밖에 못 미친다.
“잘했네.”
“예쁘다. 잘 어울려.”
“오늘 저녁 찌개는 먹을 만하네.”
“밥 먹고 공만 차는데 저 정도는 해야지.”
“지난번보다는 읽을 만하네”
지금은 이렇지만, 반복이라는 벽을 무너뜨리고 과정을 거치면서 분명 좋아지리라 믿는다. 예전에도 칭찬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는데, 이렇게 비슷한 주제로 또 글을 끼적이는 것을 보면 내가 칭찬에 목말라 있다는 반증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