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우리에게 줄 숙제

by 김재호


“오늘 여자 친구하고 싸웠는데, 위로받고 싶어. 우울하지만 따뜻함을 가지고 있는 그림 한 장하고, 바닷가 여행지에서 혼자 즐길만한 감미로운 음악 준비해 줘. 길이는 3분 30초 정도면 좋겠네. 그리고 애절한 사랑 이야기를 한 편 써줘. A4용지로 10장 분량으로. 내 스타일 알지? 지난번에 써준 것처럼 열린 결말로 부탁해.”

지시가 끝나고 10초도 채 걸리지 않아서, '전에 없던' 그림과 음악 그리고 짧은 소설이 완성되어 주문한 사람에게 제공된다.


앞으로 AI와 함께 하게 될 상황을 짧게 적어봤습니다. 어쩌면 저렇게 따로국밥 말고 영화나 애니메이션처럼 종합 예술이라고 불리는 영역까지 금방 확산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동영상 플랫폼의 인기 영상과 수많은 영화를 학습한 AI가 주어진 키워드에 맞춰 가상의 인물과 배경을 생성하면서 말입니다.


어떤가요? 정말 편리하고 환상적이겠죠.


하지만 뭔가 이상합니다. 원하는 그림을 찾거나 소유할 필요가 없고, 플레이 리스트에서 음악을 고르지도 않으며, 책을 구매하기 위해 검색을 하거나 평가를 확인하는 과정도 없습니다. 오직 최종 결과물에 대한 설명이 포함된 요구사항만 있으면 되는 거죠.



그렇다면 가까운 미래에는 이런 식으로 되지 않을까요?


더 이상 다른 사람들의 그림을 보지 않습니다. 내가 원하는 화풍과 색감을 요구하면 그에 맞는 새로운 그림을 AI가 그려주니까.


더 이상 다른 사람들의 음악을 듣지 않습니다. 내가 원하는 분위기와 장르를 요구하면 그에 맞는 새로운 음악을 AI가 작곡해 주니까.


더 이상 다른 사람들의 책을 구매하거나 읽지 않습니다. 내가 원하는 주제와 이야기 구조를 요구하면 그에 맞는 새로운 글을 AI가 써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다른 사람들이 창작했다는 것들의 면면을 따지고 보면, 어차피 다 AI의 결과물이니까 딱히 공들여 찾고 선택하는 수고를 하지 않겠죠.



예술(혹은 창작)은 먹고사는 문제와 조금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밥을 한 끼 굶으면 다시 무언가가 뱃속에 들어갈 때까지 계속 배가 고픕니다. 계속 참으면 결국 굶어 죽게 되겠죠. 하지만 예술은 그렇지 않습니다. 값비싼 예술품을 소유하기 위해 큰돈을 들이기도 힘들거니와, 감상이나 감동이 필요할 때 잠시 허한 기운을 달래주면 한동안 잊고 살 수 있죠.


더불어 취향은 인간의 수 이상으로 존재합니다. 취향이라는 게 항상 같은 형태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상황이나 시점에 따라서 변하기도 하니까요. 그러니 AI를 활용하면 더더욱 이미 완성되거나 고정되어 있는 무언가에 얽매이거나, 현재 가지고 있는 것에 취향을 맞출 필요가 없어집니다. 그렇게 타인의 창작물에 대한 욕구가 줄어들게 되면 자연스럽게 유통이 사라지게 되겠죠.


만약 그런 상황이 실제로 벌어진다면 유통이 되지 않는 창작물을 위해서 인생을 거는 창작자 역시도 서서히 사라질 듯합니다. 물론 공장에서 찍어내는 그릇들과 장인의 그릇들도 함께 공존하고 있는 것을 보면 몇몇 창작자들은 명맥을 유지하겠죠.


다만 그릇과 다르게 예술(창작) 분야가 각자가 소비자이면서 동시에 생산자(아직은 창작자보다 이렇게 부르고 싶네요.)가 될 수 있는 조건이 갖춰진다면 그릇의 경우와는 다른 결과로 이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내가 원하는 그릇을 뚝딱 만들어 주는데, 굳이 밖에서 구할 필요가 없어질 테니까요. 자급자족인 거죠.


결국은 질과 완성도가 앞으로의 방향성을 정하리라 생각됩니다. AI가 나의 Needs를 얼마나 충족시켜 줄 수 있느냐의 차이 말입니다. (시간의 문제라고 보입니다.) 당연하게도 AI가 내놓는 창의성과 품질에 따라 가격도 천차만별로 갈리게 되겠죠.




그리고 인간에게는 조금 근원적인 숙제가 생기겠군요. '내가 진짜로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내는 것'과 'AI가 제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할 수 있는 능력' 말입니다. 일부 수동적으로 수용하던 부분까지 이제는 능동적으로 요구해야 될 테니까요.




(사진 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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