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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호 May 19. 2022

전래 동화 (좀비 시인)

멀고 먼 비현실의 세계.     


철조망을 엮어 울타리를 세운 왕은 태양이 떠오르면 눈을 찌푸렸고, 달이 뜨면 공포를 느꼈다.

그는 귀가 없어 귓속말을 만들었고, 색깔 없는 그림들을 엮어 대하소설을 집필하기에 이르렀다.     


죽은 자들을 먹고 자란 병든 이야기.     


농익은 열매에서 달콤 쌉싸래한 냄새가 풍기자 구경꾼들이 침을 흘리며 뒤늦게 모여든다.

비집고 들어갈 빈자리는 여전히 그리고 항상 없다.

주연과 조연이 캐스팅된 지는 이미 오래고, 

험한 액션 장면을 대행할 스턴트맨들 또한 준비를 마쳤다.     


틀에서 나온 풀빵들은 아무것도 몰랐다.

두 손 비비며 하나같이 웃음을 지을 뿐 무지를 유지했다.


말하기 좋아하는 것들은 즐거웠다.

말만 잘하면 즐거운 일들이 생겼으니까.     


간혹 유식하면서 무식한 돌연변이가 보이면 왕이 외쳤다.

눈이 있는 자는 혀를 자르고

귀가 있는 자는 다리를 부러뜨려라.          



황금빛 왕궁의 드높은 울타리 앞.     


시인은 집을 짓고 그 옆에 무덤을 팠다.

처음 해보는 일이라 서툴렀지만 그래도 시작했다.

혀가 없어 혼자서

다리가 부러져서 팔로만 해내야 했다.     


인적 없던 시인의 집과 무덤에 형형색색의 그림자가 다가와 몸을 세운다.     


잠시 쉴라치면 날 선 발톱과 이빨이 문을 긁어대고

으르렁거리는 붉은 시선이 무덤 옆에서 기다린다.     


아름드리 거목 꿈꾸는 삽자루들도 

눈치를 보며 시인의 집 주변을 기웃거린다.     


시인은 가만히 시만 썼다.     


먹지 않는 자 배고프지 않고

슬픔이 없는 자 웃지 않는다.     


허름한 집이 제 역할을 다해간다.

시인이 판 일인용 무덤은 하루가 다르게 넓어지고 깊어지고 있다.     


시인은 두려움에 떨었다. 

외로움에 울었다.

후회와 용기가, 미련과 다짐이, 걱정과 기대가, 삶과 죽음이 뒤섞여

스스로를 잃어버리기 일쑤였다.     


그래서 이제 좀비가 되고자 한다.


대하소설의 마지막 장은 시인이 맡겠다고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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