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법 오래전 일입니다.
제가 알기론 분명히 사장인데
매번 자신을 부장이라고 소개하는
특이한 분이 계셨습니다.
명함에도 직함이 부장이었고
다들 그렇게 알아주길 바라는 눈치더라고요.
사장인데 부장 행세를 하다니
저로서는 도저히 이해하지 못할
엉뚱한 행동으로 보였습니다.
그러다가 함께 참석한 한 회의에서
드디어 그분의 비밀을 알게 되었습니다.
당장 결정하기 어려운 제안을 받게 되니까
잠시 고민하더니
이렇게 대답하는 것입니다.
“제가 결정할 사안이 아닌 것 같습니다.
회사에 들어가서 사장님과 상의하고
차후에 답변드려도 되겠습니까?”
그분은 그런 식으로
시간을 버는 것이었더군요.
회의에 참가한 사람들이
그분이 사장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면
바로 답을 하라고 다그쳤을지 모릅니다.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머뭇거리면
결단력이 모자라거나
자신감이 부족하다고
그렇게 넘겨짚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그분은
유유히 회의실을 빠져나갔고
며칠 뒤 정중하게 제안을 거절하셨습니다.
분명 거짓말이긴 하지만
일을 제대로 그리고 신중하게 처리하기 위해서
겉으로 보이는 '사장'이라는 타이틀보다
실무에 밝아 보이는 '부장'으로서
업무를 처리하는 것이 그분의 전술이었습니다.
당장 하기 힘든 의사결정은
자신의 권한 범위와 사장을 핑계로
이것저것 더 충분히 고려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을 확보하기도 하고요.
직급이나 지위가 높다고 해서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겠죠.
완벽한 사람은 없습니다.
높은 자리에 앉아 있을수록
내리게 되는 결정의 무게는 큰 부담이 됩니다.
그럴수록 자신의 단점과 약점을
보완할 방법과 전술을 마련하는 것도
삶의 지혜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분이 지금은 어떻게 지내고 계실지 모르지만
분명 획기적인 방법으로
어려운 상황들을 헤쳐 나가시고 있을 것 같네요.
(사진 출처 :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