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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호 May 30. 2023

고길동이 이렇게 불쌍했었나?

new 아기공룡 둘리

“아빠, 둘리 알아?”

“알지. 둘리는 왜?”

“어제 학교에서 선생님이 보여주셨어.”

  아마도 시청각 자료로 아기공룡 둘리를 사용했나 봅니다. 비가 오는 3일간의 연휴를 어찌 보낼지 막막했는데 잘 됐다 싶어서 찾아보니 유x브와 쿠x플레이에서 시청이 가능하더라고요.

“둘리 보여줄까?”

“좋아.”

  그렇게 저희 가족은 연휴 동안 1회부터 26회까지 아기공룡 둘리를 정주행 했습니다. 수십 년 전에 본 애니메이션임에도 몇몇 에피소드와 장면들은 기억이 나더군요.

아기공룡 둘리
1983년 4월호부터 육영재단에서 발행하던 월간 만화잡지 '보물섬'에 1983년 4월 23일[2]부터 1993년 8월 8일[3]까지 10년간 연재되었다. 

한국의 애니산업이 그래도 규모가 높은 편이지만 미국이나 일본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척박한 한국의 만화/애니메이션계의 대표적 성공작이다. 개성적인 캐릭터들, 매 화 벌어지는 흥미진진한 이야기, 센스가 묻어나는 감칠맛 나는 대사 등으로 이 작품은 남녀노소 불문하고 사랑을 받아왔다.

다른 걸 떠나서 이 작품이 동시대의 한국 작품과 차별화되는 점이 있다면 표절 논란이 전혀 없다는 점. 동시대의 많은 인기작품들이 일본식 화풍을 따랐거나, 스토리 전개나 기본 컨셉트에서 일본이나 미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지만, 둘리는 그러한 계보에 전혀 얽메이지 않은 독창적인 설정과 작풍을 자랑한다. 여기에 김수정 작가 특유의 날카로운 시대 풍자를 통한 블랙 코미디도 곳곳에 깔려 있어 어딜 봐도 단순 아동만화는 아니다. 때문에 KBS판 애니메이션으로 둘리를 처음 접한 사람은 나중에 이런 시니컬하기까지 한 원작을 보고 괴리감을 느끼기도 한다. 거기다 후반부로 갈수록 난해해지는 내용과 마구 뭉개지는 주연 캐릭터들의 그림체로 인해 더더욱 적응이 힘들 수 있다.
(출처 : 나무위키)      


  40대 중후반이 된 지금, 다시 봐도 기발한 김수정 작가의 상상력에 감탄하고 있는데 번번이 눈에 거슬리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폭력입니다. 그것도 가정 폭력. 사고를 치거나 집안을 엉망으로 만드는 둘리와 친구들에게 매번 행해지는 고길동의 폭력. 머리를 세게 쥐어박거나 눈에 멍이 들 정도로 때리고 물건을 던져서 얼굴에 맞히기도 합니다. 게다가 한 번은 커다란 망치를 들고 화를 내기도 하더군요.

  두 번째는 흡연입니다. 집안에서 담배를 피우는 고길동도 그렇고 놀이터 벤치에 나란히 앉아서 담배를 뻑뻑 피우는 어른들의 모습이 등장합니다. 지금은 상상도 못 할 장면이죠.

  아마도 그 당시의 시대상이 고스란히 드러나서 그랬겠죠. 훈육과 흡연이 워낙에 빈번하고 자유로웠던 시절에 제작된 작품이니까요. 그만큼 세월이 많이 흘렀고, 지금은 사회적인 분위기가 한층 개선되고 발전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에피소드를 쭉 보다 보니 예전에 없었던 비교적 최신 가요들이 중간중간에 삽입이 되어있더군요. 그러고 보니 화면도 상당히 깨끗합니다. 바로 검색을 해봤더니 그냥 '아기공룡 둘리'가 아니라 2009년도에 복원 및 수정을 한 'new 아기공룡 둘리'였습니다.


출처 : TMDB New 아기공룡 둘리 (2009)


new 아기공룡 둘리
전작과는 달리 작화나 캐릭터들 성격 등이 원작 만화에 가까워지면서 특유의 개그가 살아난다는 점과, 더욱 늘어난 에피소드 등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동네 비쥬얼이나 고길동 패밀리의 생활상은 원작 1980 ~ 90년대의 쌍문동의 모습을 베이스로 하고 있지만 방영 시점인 2008년과 2009년을 연상케 하는 묘사도 많다. 작품의 물가가 2008년 폭등한 물가를 기준으로 잡혀 있으며, 그 당시에는 이 세상에 나오기도 전이었던 버락 오바마나 원더걸스, 소녀시대에 대한 언급도 대사에 나온다. 또한 원작자 김수정이 원했던 당시 세태에 대한 풍자와 패러디가 원작 내용에 알게 모르게 슬쩍 추가되어 있다. (출처 : 나무위키)



  개인적으로 조금 아쉬웠던 점은 예전 그 주제곡(요리 보고 조리 봐도 알 수 없는 둘리 둘리~)이 사라졌으며, 성우의 목소리가 바뀌었더라고요. 그래서 향수를 온전히 불러일으키기에 다소 부족한 느낌이었지만 처음 시청하는 분들은 딱히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긴 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5ZXYeCqixxw


  그렇게 마지막 회까지 다 보고 나서 제가 느낀 점은 ‘고길동이 참 불쌍하다.’ 였습니다. 개구쟁이 녀석들의 온갖 악행과 기행을 참아내는 모습을 보면서 왜 어릴 때는 둘리가 착하고 고길동은 나쁜 아저씨라고 여겼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더군요.

  그래서 아이에게 은근슬쩍 말을 건네 봤습니다.

  “둘리, 또치, 도우너가 너무하네. 길동이 아저씨가 완전 보살이야 보살. 아빠 같으면 당장 내쫓아버리고 못 들어오게 할 텐데.”

  그랬더니 바로 뾰족한 대답이 돌아옵니다.

  “아니야. 아저씨가 나빠. 둘리는 착하고 귀엽잖아.”

  동상이몽도 이런 동상이몽이 없군요. 연령에 따라서 선과 악에 대한 기준과 평가가 달라지는 것인가 하는 의구심이 드는 순간이었습니다.

  시간이 나실 때 'new 아기공룡 둘리'를 한 번 감상해 보시고 과연 어느 쪽이 더 사악한지 의견을 주시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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