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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호 May 31. 2023

벌건 대낮에 가출을 꿈꾸다니


어릴 때는 고분구분

말을 잘 듣더니

이제는 조금 컸다고

삐뚤어지기 시작하는구나.


그냥 조금 버티다

포기할 줄 알았는데

내가 너를 너무

쉽게 봤나 보다.


이리 과감하게

탈출을 꿈꾸다니

그것도 훤한 대낮에.


모두 잠든 밤을 틈타면

보다 수월할 텐데

정직한 거니

아니면 모자란 거니.


본능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렇게 유혹을 이겨내지 못하면

커서 무엇을 이룰 수 있겠니.


밖에 나가서 비바람 맞으며

고생을 해 봐야

정신을 좀 차리려나?


또 한편으로는

너의 처절한 몸부림이 안타까워

내 마음도 기울어지려 하는구나.


탈출을 꿈꾸는 바실리스크 (출처 : 김재호)


이렇게 마냥 두고 볼 수는 없지.


내일 또 탈출을 감행하겠지만

나 또한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단다.


하루가 저물고 있으니

집을 향해 돌아오렴.


시원한 물 한 모금도

촉촉하게 챙겨줄 테니.



강제로 집으로 돌아온 바실리스크 (출처 : 김재호)


  아이가 학교에서 데리고 온 씨앗이 어느덧 자라서 사춘기에 접어들었나 봅니다. 벌건 대낮에 가출을 꿈꾸며 온몸을 창 밖을 향해 기울이고 있더군요. 밤은 무서운지 낮에만 저리 생떼를 부립니다. 본능적인 행동임을 알고는 있지만 그냥 두고 볼 수만은 없죠.


  슬그머니 화분을 돌려놓습니다. 갈 때 가더라도 아직은 집에 머물기 바라면서.




  P.S.) 녀석은 바질입니다. 싹을 틔운 날 아이가 이름을 '바실리스크'라고 지어주었습니다. 이구아나과에 속한 도마뱀을 통틀어 바실리스크라고 하더군요. 기울어져 있는 모습이 마치 초록색 도마뱀 같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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