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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호 Jul 06. 2023

바보 같은 부녀


  중학생이 되었을 무렵, 저는 안경 쓴 친구들이 부러워서 일부러 텔레비전을 가까이서 본다거나 어두운 곳에서 엎드려 책을 읽었습니다. 지금 와서 그 당시를 떠올려보면 무식하다는 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로 지독하게 눈을 괴롭혔죠.


  결국 (저의 소망과 염원에 부합하여) 세상은 흐릿해지기 시작했고, 저의 만행을 전혀 모르셨던 어머니께 바로 말씀드렸습니다.


  "엄마! 눈이 안 보여요. 공부를 너무 열심히 했나 봐요."


  성장기고 하니 조금 두고 보자는 조언에도 어머니를 들들 볶아서 끝내 안경점에 찾아갔죠.


  막상 안경을 쓰고 나니 처음에는 만족스러웠습니다. 괜히 똑똑해진 것 같기도 하고, 대다수 친구들과는 다른 특별한 무언가를 지녔다는 것이 저를 으쓱하게 만들더군요.


  하지만 짧디 짧은 생각으로 간과한 것이 그리 많이 있었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좋아하는 농구를 하다가 안경이 망가지기는 일이 부지기수였고, 그로 인해 자칫 눈을 크게 다칠 뻔한 적도 있었습니다. 게다가  안경을 착용하시는 분이시라면 잘 아시다시피 라면 먹을 때, 비 오는 날, 수영장이나 바닷가에서, 겨울철 외부에 있다가 따듯한 가게에 들어갔을 때 등등 불편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죠.


  특히 안경다리가 부러지거나, 안경알이 깨진 날은 제대로 된 생활을 하기 힘듭니다. 부러진 안경을 대충 맞춘 후 테이프를 칭칭 감아서 우스꽝스럽게 쓰고 다니기도 했고, 한쪽만 남아있는 안경알을 통해 겨우 수업을 따라갔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후회해도 늦었죠. 그 후로도 시력은 계속 떨어졌고, 지금은 면도를 할 때도 얼굴을 자세히 보려면 거울에 조금 다가서야 할 정도입니다.


  라식이나 라섹 수술도 고려를 해봤는데, 아내가 무섭다면서(수술은 제가 하는데 왜 본인이 그렇게 무서울까요?) 극렬히 반대를 해서 아직도 안경을 쓰고 지내는 처지입니다. 아내는 시력이 좋아서 안경 쓴 사람의 서러움을 전혀 모릅니다. 쳇!


출처 : Pixabay


  그런데 저야 뭐 이제는 노안을 걱정할 나이니 그러려니 해도, 아이가 문제입니다.


  학교 칠판에 적힌 글씨가 안 보인다고 해서 검사를 받아봤더니 시력이 매우 낮게 나오더군요. 그래서 일단 안경을 써보기로 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불편하다면서 그냥 다니더군요. 좋지 않은 시력으로 다니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어서 결국 현재는 드림렌즈를 끼고 있는데, 정기 검진 때마다 아주 조금씩 더 낮아지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사실 딸도 이 정도까지 눈이 나빠지지 않을 기회가 분명히 있었는데, 딱 제가 했던 행동들을 똑같이 하더라고요. 패드나 노트북을 가까이서 보고, 책도 누워서 보고. 제 눈에 띄는 족족 멀리서 바른 자세로 앉으라고 해도 딱 그때뿐이고 나중에 보면 다시 눈에 나쁜 자세가 되어있었습니다. 자기는 절대로 아니라고 하는데 분명 친한 친구 몇몇이 안경을 쓰니까 그 모습이 부러웠을 것이 확실합니다. 어째 이런 것도 닮는지 신기하면서도 어이가 없네요. 몇 가지 되지 않지만 그나마 아빠가 가지고 있는 좋은 점을 좀 닮았으면 좋겠는데 말이죠.

안경 쓴 부녀 (출처 : 김재호 with DALL E)


  눈의 소중함을 미리 깨닫지 못한 바보 같은 부녀의 이야기였습니다. 그리고 너는 나중에 엄마가 아무리 무섭다고 해도 꼭 시력 교정 수술을 받으렴.




(커버 이미지는 아이와 의 안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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