꽉 꽉 채워지고 있는 계좌

by 김재호


주말에 부모님을 모시고 오랜만에 점심 식사를 함께 했다. 입이 짧은 아이는 어른들의 대화에 끼기도 애매하고, 그냥 있자니 심심했는지 챙겨 온 책을 꺼내서 읽기 시작한다. 평소에는 본인 짐을 잘 챙기지 않는데, 이런 상황을 몇 차례 겪어 본 탓인가? 그것도 두 권씩이나 가져왔다고?


“어쩜 아빠 어릴 적 하고 그렇게 꼭 닮았니? 아빠도 책 엄청 많이 읽었는데.”


아이는 나와 닮았다는 말을 매우 싫어하지만, 할머니의 말씀이니 그냥 부드럽게 넘어가 준다. (이제 사회생활이 무엇이지 깨닫고 있는 듯하다.)


사실 나는 지금도 책 읽는 것을 좋아한다. 얼마나 읽고 있는지 대충이라도 확인해 보고자 도서관 어플을 실행시켜 봤다.


KakaoTalk_20230717_122430599.jpg 출처 : 김재호


지난 7년간 총 551권을 대출했단다. 간간히 아이의 책도 끼어있긴 하지만 그래도 제법 많은 양이다. 어림잡아 한 달에 여섯 권쯤 책을 읽었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에 아이가 도서관에서 발급해 줬던 독서통장이 가득 찼다며, 신규 발급을 받아달라고 했던 것이 기억났다. 그래서 집에 들렀다가 소화도 시킬 겸 도서관을 향했다.


집에 남겨 놔야 하는 책이 다섯 권 그리고 반납해야 할 책이 열 권. 걸어서 가기로 했으니 힘겨운 여정이 되겠군.

KakaoTalk_20230717_122430599_02.jpg (출처 : 김재호)


매주 그랬던 것처럼 반납과 대출을 마무리하고 독서 통장 발급 요청을 했더니, 담당자께서 놀라신다.


“우와! 아이가 책을 진짜 많이 읽나 보네요. 이렇게 통장을 이어서 발급해 드리는 게 오랜만이라서요.”


아이는 나보다 두 배 정도 읽는다. 책 읽을 여유가 거의 없는 엄마의 카드로도 대출을 하니까 그 정도 될 것이다. (우리 집 카드는 세 장이고, 한 명당 다섯 권까지 대출이 가능하다.) 게다가 학교 도서관에서도 못 보던 책이 보이면 또 빌려 오니까 실로 어마어마한 양이 아닐 수 없다.


KakaoTalk_20230717_122430599_01.jpg 출처 : 김재호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읽은 책들을 다 사줬다고 상상해 보면 아찔하다.


도서관아~ 정말 고맙다! 내가 뭐 해 줄 거는 없고, 빌린 책은 깨끗하게 읽고 돌려줄게.


다른 건 몰라도 책을 이렇게 스스로 읽어주니 참 고마울 따름이다. 앞으로 어떤 변화가 생길지는 모를 일이지만 한 번 생긴 습관은 쉽게 버리지 못하겠지.


‘네 통장에 돈이 불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아마 다른 곳에서 차곡차곡 너를 위한 힘이 쌓이고 있으리라 아빠는 믿고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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