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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호 Aug 03. 2023

내가 담당자였어?

“운동화 빨려고?”


“응. 장마 때 젖었던 신발에서 냄새나더라고.”


아내가 본인과 아이의 신발을 한 켤레씩 들고 욕실로 들어가는 중입니다. 이 때다 싶어서 후다닥 달려가서 애교 섞인 목소리로 물어봅니다.


“내 운동화도 하나 빨 거 있는데, 줄까?”


“뭐? 지금 그건 말이야 방귀야.”


“방귀였. 냄새 나?”

     

“그나저나 손목도 시큰거리고 팔도 아픈데. 이러다가 탁구 같이 못 쳐줄 듯.”


“그냥 대충 해. 근데 그거 알아? 치약 발라 놓고 그냥 헹구기만 해도 때가 쏙 빠진다던데? 그렇게 하면 손목 괜찮을 거야.”




짧지만 불안한 정적이 흐릅니다.




“오빠.”


“왜?”


밝아진 아내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한줄기 두려움이 서늘하게 가슴에 박힙니다.


“우리 집 빨래 담당이 누구지?”


“나.”


“신발도 빨래처럼 빠는 거잖아.”


“잠깐만. 스톱!”


깊은 수렁에 빠지고 있음을 알고 있지만 벗어나기엔 늦었습니다. 젠장.


“자자, 담당자님! 어서 욕실로 들어가시지요. 그동안 제가 건방지게 담당자님의 일을 대신하고 있었네요."


"방귀 냄새난다. 그만해라."


"알았어. 오빠 신발 어느 거 빨아야 하는데? 가져다줄게. 치약이랑 못 쓰는 칫솔만 있으면 되는 거지? 간단하네.”


그렇게 시무룩해진 기분으로 쪼그리고 앉아서 운동화 끈을 풀고 있는데 아내가 두 켤레를 들고 돌아옵니다.

으악! (출처 : 김재호)

“뭐야? 이건 깨끗한데?”


“아, 헬스장에서 신을 건데 깨끗하게 빨아서 신발장에 갔다 놓으려고. 그럼 수고해~ 저녁에 탁구는 쳐 줄게.”


그래....... 참 고맙구나. 다음부터는 입으로 방귀 뀌지 말아야겠다. 그나저나 치약으로 문지르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잖아?! 이러다가 내가 아파서 탁구 못 치겠어! 엥? 그럼 앞으로 쭈욱 이건 내 일이 되는 거야?


당분간 아무도 새 운동화 못 산다!! 그리고 제발 깨끗하게 신어!!


빨래 끝~ 아니다. 양치 끝이라고 해야 하나? (출처 : 김재호)
술 취해서 이거로 양치하면 큰일인데. (출처 : 김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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