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라 믿고 마셔보자.

막탄허주

by 김재호


평소에 눈여겨보던 물건을 저렴하게 판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없어도 그만인 일종의 사치품 내지 멋 내기 용도라 고민에 빠져 주저합니다. 어마어마하게 비싸면 그냥 포기하겠는데 그렇지도 않으니 눈앞에서 자꾸만 아른아른거립니다.


아내에게 말했더니 이런 기회가 또 언제 있겠냐며 고맙게도 당장 사라고 하더군요.


"오전에 많이 팔려서 이제 새 제품은 딱 하나 남았어요."


실물을 다시 한번 확인하기 위해 매장에 방문했다가 점원의 이 말이 결정타가 되었고, 결국 구매하기로 했습니다.


좋다. (출처 : 김재호)


"하루에 오천 원씩 계산해서 앞으로 오십일 동안 막걸리 안 마실게."


막걸리를 즐겨 마십니다.


쌀로 만들었으니 공깃밥으로 삼고, 반찬은 안주 삼아 보통 2~3통 정도를 비웁니다.


"괜히 지키지도 못할 약속 애초부터 하지 말아. 내가 한두 번 속아?"


하긴 제가 금연을 했고 체중도 많이 줄였지만, 술은 여전히 못 끊고 있으니 술에 대해서만큼은 제 말에 신뢰가 가지 않겠죠.


그래서 이틀간 각고의 고민 끝에 신제품을 하나 제조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막걸리 대체품으로 손색이 없습니다. 생산 방법은 저만의 비밀로 간직하려 했지만 특별히 여러분들을 위해 큰 결심을 했습니다.


대략적인 공법을 아래와 같이 밝힙니다.


우선 생수에 단백질 셰이크를 평소 양의 1/3만큼 탑니다.(두 병을 마신다면 1/2) 취향에 따라 콤부차 가루나 탄산을 소량 넣어주면 더 좋습니다. 물의 온도도 기호에 맞춰서 조절하시면 되고요. 물론 물 대신 우유를 사용하면 훨씬 고소한 맛을 즐길 수 있죠.


제조 과정 (출처 : 김재호)


그럴싸한 색깔의 막걸리 대용품이 탄생하는 순간입니다. 아내의 반응이 가히 폭발적입니다.


제 전용 술잔에 채우고 나니 더 비슷해 보입니다. 어차피 기분 내려고 마시는 술이니 저 스스로 '이건 술이다.' 혹은 '아~ 취한다.' 하면서 자기 최면만 걸면 됩니다.


오늘은 복숭아 콤부차 (출처 : 김재호)


아이가 이런 제 모습을 보더니 이러더군요.


"아빠가 무슨 원효 대사야?"


그 말에 다 같이 웃었습니다.


아무튼 1차 임상실험은 성공적이었는데 사소한 문제점도 노출이 되더군요. 두 통 이상 마시면 술과 달리 물립니다. 이걸 장점으로 포장해야 할까요? 아니면 추가 개선이 필요할까요?


며칠이나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저의 노력이 가상하여 가끔은 해골물 말고 암반에서 끌어올린 깨끗한 물을 허락받는 날도 있겠죠?


마지막으로 어떤 이름을 붙이면 좋을지 공모전을 열고 싶군요. 막 걸러 낸 술이 아니라 막 탄 가짜 술이니까 '막탄허주'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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