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에 젖은 박스 몇 장
수레보다 가벼운 할머니
올라갈 수 없는 오르막
멈출 수 없는 내리막
핏줄 안에 가난이 고였다가
탯줄을 타고 다음 백 년을 흐른다.
굵어진 빗줄기
허기진 발걸음.
길가에 빈 병들이 어서 오라며 손짓하고
쓰린 무릎은 그냥 가자며 성을 낸다.
아들놈 하나. 딸년 셋. 손자 손녀들이
빗물에 쓸려 뭉그러진다.
이러면 안 되지. 내가 챙겨야지. 암, 그래야지.
젖은 박스 아래 마른 박스
그 밑에 빈 병들을 차곡차곡 쌓고
주름진 손으로 물기를 쓸어내린다.
할머니가 끄는 수레는 항상 무겁다.
펴지 못하는 등을 타고 빗물이 흐른다.
들지 못하는 고개 밑으로 눈물이 흐른다.
할머니가 끄는 수레가 움직인다.
조금씩 느리게 조금씩 빠르게.
시대가 그랬고 가족이 그랬다.
빈곤이 그랬고 삶이 그랬다.
그저 그렇게 모든 것이 당연했다.
영감, 뒤에서 좀 밀어주지
나만 두고 어딜 그리 급히 갔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