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당 되기

by 김재호

악당이 되기로 했어.

이유는 묻지 마.

이유 있는 악당은 진정한 악당이 아니야.


엄마의 얇은 지갑에서 만 원을 훔쳤어,

내 지갑엔 오만 원이 있었지만.

식당에 들러 맛있게 한 끼를 때우고

주인의 눈을 피해 그냥 도망쳐 나왔어.

그 와중에 들고 나온 사탕을 빨며 껍데기는 길에 버렸지,

바로 옆에 쓰레기통이 있었거든.

빨간색 신호와 횡단보도를 무시하고

화가 난 경적소리에 장단 맞춰 유유히 무단횡단을 했지.

넘지 말라는 줄을 넘어 잔디를 밟았고,

어린아이 옆에서 담배를 피우며 침을 뱉었어.

지하철에 꼬부랑 할머니가 탔지만

꽉 찬 노약자석에 당당하게 앉아 있었지.

친구와 약속한 시간에 한 시간쯤 늦었어.

하지만 사과 따위는 없었지.

대신 친구에게 만원을 빌렸어,

지갑엔 육만 원이 있었지만.


악당이 되니 살아 있는 것 같아.

사람들의 날 선 시선, 욕, 삿대질 모두 즐거움이야.

알고 있지? 곧 우리의 세상이 온다는 거.


너도 악당이 되어보지 않을래?

한물간 외로운 '영웅'이 되고 싶다면,

굳이 말리지는 않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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