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핸들이 고장 난 에잇 톤 트럭'은 아니다. 내가 방향을 바꿀 때마다 트럭 역시도 헤드라이트를 번뜩이며 나를 뒤따라 오니까.
내가 멈추면 녀석도 속도를 줄인다. 하지만 완전히 정지하지는 않고 아주 천천히 그러니까 먹잇감을 구석으로 몰아넣은 맹수처럼 그르렁 소리를 내며 서서히 나를 압박해 온다. 이제는 그만 포기하고 순순히 운명을 받아들이라는 듯이.
반면 내가 달리면 녀석도 속도를 올린다. 그렇게 도망가봐야 소용없다고 소름 끼치는 경적을 울리며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토끼몰이를 한다. 방향을 급격하게 바꿔봤자 나만 고될 뿐이다. 어차피 숨을 곳도 없고 도움을 요청할 사람도 보이지 않으니까.
이상한 점은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쫓겼냐는 것이다. 그리고 도대체 누가 이런 장난 아닌 장난을 치는 것인지 전혀 이해할 수가 없다. 살면서 누구에게 해코지를 한 기억도 없고, 깊은 원한을 살 만한 일도 전혀 하지 않았다. 그저 나답게 살지 못한 나에게 가장 미안했고, 엄마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자책감이 다소 있을 뿐이다.
다리가 아프고 발바닥에서는 불이 난다. 화가 난다. 이유도 모르고 트럭을 피해서 계속 도망 다니는 것도 이제는 지쳤다. 트럭을 향해 돌아섰다. 헤드라이트 때문에 눈이 부셔 운전석에 누가 탔는지 보이지는 않지만 당당히 맞서 소리를 질렀다.
"누구야?! 너 누구냐고?! 당장 이 재미없는 장난을 멈추지 않으면 나도 가만히 있지 않겠어!"
트럭은 내 말을 무시하고 또다시 조금씩 조금씩 나와의 거리를 줄인다. 내가 물러설 기미가 없자 잠시 멈추는 듯싶더니 왼쪽 방향 지시등을 켠다. 나를 피해 가려는 의도로 보여 안심이 되던 찰나. 비어있는 오른쪽으로 똑같은 트럭 하나가 거대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제는 두대의 트럭이 내 등뒤에 있다. 공포감은 네 배가 되었고 두 트럭은 유기적인 움직임을 보이며 나를 계속 어딘가로 내모는 중이다. 비명을 지르고 싶지만 호흡이 달려 그럴 여유 따위는 없다. 살아보겠다고 달리고는 있지만 과연 이 상황에서 벗어날 방법이 있긴 한 건지 궁금하다.
모든 걸 내려놓고 담담히 트럭을 받아 들어야 끝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가슴을 옥죄어 온다. 왜 하필 트럭일까? 저 트럭에는 과연 무엇이 실려있을까? 나는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되었을까? 궁금증은 많지만 한가롭게 그 답을 찾을 시간은 없다. 언제 덮칠지 모르는 트럭을 피해야 할 뿐.
진흙이든 가시밭길이든 가야만 한다. 살아남아야 하니까. 낮이든 밤이든 가야만 한다. 트럭이 나를 덮치는 순간 나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흩어질 테니까.
앞을 보면서 달리면 조금이나마 수월하겠지만 그럴 수가 없다. 쫓아오는 트럭이 얼마나 바짝 다가왔는지가 궁금하기도 하고 한편으로 두려워서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된다. 조금 멀리 떨어져 있다고 안심하다가는 언제 당할지 모르기에 언제든 뒤를 의식해야 한다.
어느덧 트럭은 세 대가 되었다가 방금 전 네 대로 늘었다. 온몸은 땀으로 흠뻑 젖었고, 며칠을 굶을 것 마냥 허기가 지고, 눈꺼풀은 자꾸만 감기려 한다. 팔은 천근이고 다리는 만근이라 비틀비틀 간신히 걷는다. 비로소 그때가 바싹 다가왔음을 본능적으로 깨닫는다.
트럭을 향해 돌아서 두 무릎을 꿇었다. 손가락 하나 까닥할 힘도 남아있지 않다. 떨어졌던 고개를 힘겹게 들자 나머지 트럭은 사라지고 하나만 남았다. 땀이 식어 오한이 밀려오지만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뚝뚝 흐른다. 뭐를 위해 이렇게 달렸단 말인가. 이제는 모두 끝이다. 이제 다 내려놓자.
아주 느리게 다가오던 트럭이 멈췄다. 시간도 함께 정지한 듯 주변은 적막하고 허전함으로 인해 한기가 느껴진다.
덜컥.
마침내 트럭의 운전석이 열렸다. 그리고 누군가 밖으로 나왔다. 생소한 듯 익숙한 얼굴. 영락없는 나지만 어딘가 다른 분위기다. 지금의 내가 조금 늙는다면 저런 모습이려나?
저벅저벅 거침없이 다가온 그가 입을 연다.
"이제 바꿀 시간이야. 네가 몰아. 저 트럭."
"잠깐만. 저기엔 뭐가 실렸는데?"
"욕심. 우리의 끝 모를 욕심. 열정으로 가득 찬 욕심. 혹시 여기서 멈출 생각은 아니지?"
"물론이지. 지금까지 내가 달린 게 있는데. 각오하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