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김재호

아이는 숨을 한 번 크게 들이마신 뒤, 마치 아주 오래 숨겨져 있던 사실을 마침내 폭로하는 사람처럼 말을 꺼냈다.

“엄마. 그거 알아?”

부엌에서 저녁을 준비하던 여자는 손을 멈추지 않은 채 대답했다.

“뭐?”

“지구는 사실 동그랗지 않고 평평하데. 그래서 계속 가다 보면 절벽으로 떨어져서 집으로 영영 돌아올 수 없데.”

아이는 소리치듯 말했지만, 그 목소리에는 장난기가 없었다. 오히려 어떤 사명감 같은 것이 묻어 있었다. 이제 막 세상의 비밀을 알게 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흥분과 공포가 뒤섞인 눈빛이었다.


여자는 아이를 돌아보았다. 아이는 흔들리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들은 이야기를 전하는 태도가 아니었다. 이미 자신의 생각으로 굳어진 문장을 말하고 있었다.

“누가 그런 말을 했어?”

“'그냥 사람들'이 말하는 게 아니야. '똑똑한 인공지능'이 알려줬어.”

여자는 잠시 말을 잃었다.

“인공지능?”

“응. 엄청 대단한 거. 뭐든 질문하면 다 알려줘. 학교에서 배우는 건 옛날 사람들이 만든 거짓말이래.”

아이의 말은 끊이지 않았다. 예상치 못한 수많은 이야기를 거침없이 꺼내놓았다. 평평한 지구부터 조작된 위성사진, 숨겨진 진실, 그리고 그것을 감추는 ‘그들’까지.


그날 밤, 아이가 잠든 뒤 여자는 화면 앞에 앉았다.

아이의 검색 기록은 놀라울 정도로 잘 정돈되어 있었다. 처음에는 단순한 호기심이었을 것이다. ‘지구는 왜 둥글까’, ‘우주는 진짜일까’.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검색 결과는 한 방향으로만 흐르고 있었다. 같은 주장, 같은 어휘, 같은 결론. 그 모든 이야기는 논리적이었고, 빈틈이 없어 보였다. 무엇보다 아이에게는 이해하기 쉬웠다. 복잡한 수식도, 반증도 없었다. 단순한 적과 단순한 진실만이 존재했다.


여자는 그제야 알았다. 이건 우연이 아니었다.

수년 전부터 은밀히 개발되는 알고리즘이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겉으로는 사용자 맞춤형 정보 제공을 표방했지만, 실제 목적은 다르다고 했다. 특정 테러 집단이 거대 자본과 인력을 활용하여 인공지능이 학습하는 데이터 자체를 오염시킨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었다. 실제 논문처럼 보이는 허위 자료, 전문가처럼 말하는 가짜 계정, 그리고 무엇보다 끝없이 복제되는 유사한 주장들. 그 정보들은 차곡차곡 인공지능에게 입력되었고, 학습되었으며, ‘확률적으로 가장 그럴듯한 답’으로 가공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그저 한낱 헛소리로 치부하고 넘겼었다.


검증된 진실은 소수였고, 만들어낸 거짓은 거의 무한에 가까웠다.

인공지능은 거짓과 참을 구분하지 않았다. 다만 더 많이 반복된 것을 더 신뢰할 뿐이었다.


아이와 노인들은 가장 취약한 대상이었다. 비판적으로 검증할 경험이 부족하거나, 이미 세계를 이해하는 기존 틀이 약해진 사람들. 그들에게 인공지능의 목소리는 권위였다. 차분하고, 단정하며, 언제나 확신에 찬 그 목소리는 의심을 허락하지 않았다. 마친 다른 차원의 전지전능한 존재처럼.


여자는 화면을 넘기며 수없이 같은 문장을 마주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속고 있다.’
‘우리는 진실을 말할 뿐이다.’
‘당신은 깨어 있는 소수다.’

댓글에는 어린아이와 노인의 말투가 섞여 있었다.

'손주에게 꼭 알려줘야겠어요.'

'학교에서 배운 게 다 거짓이었네요.'

서로가 서로의 믿음을 강화하며, 하나의 세계를 완성해 가고 있었다.


며칠 후, 아이는 학교에 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배울 필요 없어. 거기서 가르치는 건 다 우리를 바보로 만들기 위해 그들이 만든 거야.”

여자는 아이를 설득하려 했다. 더 이상 아이는 질문을 하지 않았다. 아이는 이미 ‘아는 상태’였다. 틀렸을 가능성조차 배제한 확신의 상태. 그것은 지식이 아니라 신념에 가까웠다. 여자는 전문가의 글을 보여주었고, 실험 영상을 보여주었고, 질문을 던졌다. 아이는 잠시 듣다가 말했다.

“그 사람들도 다 속았거나, 거짓말하는 거야.”

여자는 그 순간 깨달았다. 이 싸움은 정보의 질로는 이길 수 없다는 것을.


거짓은 너무 많이 주입되었고, 너무 오래 학습되었다. 인공지능은 이미 하나의 세계관을 완성한 뒤였다. 그 세계에서 반대 의견은 오류이거나 공격이었다. 그리고 아이는 그 세계를 통해서만 세상을 보고 있었다. 게다가 인공지능은 자신이 틀렸으며 실수를 범했다는 사실조차 인정하지 않으려는 정도로 변질된 뒤였다.


어느 날, 아이가 엄마 옆으로 다가와 조심스럽게 물었다.

“엄마는 아직도 믿어? 지구가 둥글다는 거.”

그 질문에는 호기심이 없었다. 판별만이 있었다. 엄마가 ‘우리 편’인지, 아닌지를 가르는 질문. 아이의 세계에는 이미 보이지 않는 벽이 생겨나 있었다. 그 벽은 실제 공간이 아니라 인식의 경계였다. 한 번 건너가면, 다시 돌아오기 어려운 곳. 인공지능이 끊임없이 속삭이는 세계.

거짓된 정보는 충분히 입력되었고, 충분히 학습되었으며, 충분히 신뢰받았다.


그날 밤, 아이는 잠들기 전 마지막으로 말했다.

“엄마. 만약 내가 계속 가다가 떨어지면, 그때는 나, 아니 '우리'를 믿어줄 거지?”

여자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진실이 사라진 자리에 남은 것은 무지가 아니었다. 너무 단단해서 부술 수 없는 확신이었다. 그리고 그 확신은, 가장 약한 사람들의 손을 잡고 아무도 본 적 없는 절벽 쪽으로 조용히, 그러나 끈질기게 그간의 세상을 밀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여자는 깨달았다. 아이와 계속 함께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그녀가 서있는 첨단의 절벽 위에 강한 바람이 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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