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 창문으로 가을 햇살이 기울어 들고 있었다.
수현은 책상 맞은편에 앉아, 무릎 위 노트북을 조심스레 고쳐 잡았다.
최영도 교수는 잠시 안경을 벗어 책 위에 내려두고, 찻잔을 들었다.
"교수님, 왜 과학사는 뉴턴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하셨어요?"
수현이 조심스레 물었다.
최영도 교수는 찻잔을 내려놓으며 미소를 지었다.
"아이작 뉴턴. 그 이름은 전설이지요."
잠시 숨을 고르던 그는 창가 너머로 시선을 던졌다.
"사과가 떨어지는 걸 보고 만유인력을 생각한 사람.
수학, 물리, 광학, 천문학, 손댄 분야마다 혁신을 일으켰죠.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완벽한 천재라고 부릅니다."
그는 손가락으로 책장 하나를 톡 두드렸다.
"하지만 뉴턴의 중요성은 업적의 크기에만 있지 않습니다. 그는 과학의 방식 자체를 바꿨습니다."
수현은 그의 말을 받아 적다가 손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최영도 교수는 손끝으로 공중에 작은 원을 그리며 말했다.
"그전까지 사람들은 자연을 관찰만 했습니다.
태양이 뜨고, 달이 지고, 사과가 떨어진다는 건 알았죠.
하지만 그걸 하나의 언어로 묶지는 못했습니다.
뉴턴은 그걸 해냈어요.
자연을 수학으로 설명했습니다.
'왜?'라는 질문을 식으로 바꾸고,
법칙으로 만들었죠."
뉴턴이 쓴 『프린키피아』는 단순한 과학서가 아니었다.
그 책은 한 시대의 선언문이었다.
우리는 자연을 이해할 수 있다.
이해한다는 건, 계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날 이후 과학은 달라졌다.
자연은 더 이상 신비가 아니라, 인간의 지성으로 열 수 있는 문이 되었다.
잠시 숨을 고른 최영도 교수는 수현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과학사는 뉴턴 이전과 이후로 나뉩니다.
그전까지 사람들은 왜 그런지 묻지 않거나, 묻더라도 답을 찾지 못했어요.
뉴턴 이후 사람들은 이유를 묻고, 답을 찾고, 그 답이 맞는지 다시 물어보게 되었죠."
사람들은 뉴턴의 위대함을 오래도록 칭송해 왔다.
18세기 영국 시인 알렉산더 포프는 이렇게 썼다.
"자연과 자연의 법칙은 밤의 베일 속에 잠들어 있었다. 하나님이 '뉴턴 있으라'고 말씀하시자, 빛이 되었다."
(Nature and Nature's laws lay hid in night. God said, Let Newton be! and all was light.)
수현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교수님, 뉴턴도 모든 걸 다 안 건 아니잖아요?"
최영도 교수는 눈꼬리를 살짝 올리며 웃었다.
"맞아요, 아주 중요한 질문입니다."
그는 잠시 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뉴턴은 중력을 정리했지만, 스스로도 그걸 완전히 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에게 중요한 건, 그 힘이 만든 움직임을 수식으로 정확히 풀어내는 것이었죠.
‘왜 그런가’를 묻는 것보다, ‘어떻게 그렇게 되는가’를 설명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최 교수는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그리고 인간적으로도, 완벽하진 않았어요.
고집이 세고, 의심이 많았고, 라이프니츠와의 미적분 논쟁은 거의 전쟁 수준이었죠.”
그는 책상 위에 잠시 시선을 두었다가 말을 이었다.
“평생 독신으로 살았습니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재혼하며 외가로 보내진 상처가 컸습니다.
아마 그 상처 때문에 인간관계를 피하고 학문에 몰두했겠지요.
세상은 그의 연인이자, 그의 적이었습니다.”
수현은 고개를 숙이고 메모하다가 잠시 눈을 들었다.
"그래서 그 말이 나온 거군요?
'뉴턴은 자연의 법칙은 꿰뚫었지만, 인간관계의 법칙은 끝내 풀지 못했다.'"
최영도 교수는 빙그레 웃었다.
놀라운 사실은 또 있다.
뉴턴은 수십 년간 연금술에 빠져 있었고, 신학과 점성술, 비밀스러운 해석학도 몰두했다.
왕립 조폐국장이 된 뒤에는 위조범들을 색출해 교수형에까지 보냈다.
그는 단순한 학자가 아니었다.
더 많이 알고 싶고, 더 많이 가지려 한 인간이었다.
최영도 교수는 다시 잔을 들었다 내려놓았다.
"우리가 뉴턴을 천재로만 기억하는 건,
그의 업적이 너무 커서, 그 그림자 속에 그의 인간적인 모습이 가려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신화를 걷어내고 보면, 그는 결코 행복하지 않은 사람이었어요.
불안하고, 집착하며, 실패와 집념 속에서 과학을 만들어낸 사람이었지요."
수현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뉴턴은 질문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최영도 교수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왜?'라고 묻고, 끝까지 물고 늘어졌죠."
과학은 그런 사람들의 피와 땀에서 태어났다.
불완전함이 과학을 앞으로 밀었다.
뉴턴의 진짜 유산은, 완벽한 답이 아니라 질문을 멈추지 않는 태도다.
최영도 교수는 손에 든 책을 가만히 쓰다듬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죠. 뉴턴은 중력이 무엇인지는 알지 못했습니다.
그저 그 힘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그 효과를 계산해 낸 거죠.
왜 물체들이 서로 끌어당기는지, 그 본질은 끝내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뉴턴은 중력의 본질을 설명하지 못했다.
그는 『프린키피아』 서문에서 솔직히 말했다.
"이 모든 자연 현상은 물체의 구성 입자들이 어떤 힘을 발휘하면서 나타나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 힘이 작용하는 근본적 원인은 알 수 없지만, 입자들은 이 힘에 의해 서로 뭉쳐서 규칙적인 모양을 형성하거나, 서로 밀어내면서 거리가 멀어지기도 한다. 과거의 철학자들이 자연 현상을 제대로 서술하지 못한 것은 입자들 사이에 힘이 작용한다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제시한 원리가 철학이나 여타 학문에 밝은 빛을 비춰 올바른 길로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프린키피아』, 아이작 뉴턴 지음, 박병철 옮김, 휴머니스트출판그룹)
그가 한 일은, 그 힘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수식으로 정리한 것이었다.
물체들은 서로 끌어당기고, 밀어내고, 움직였다.
왜 그런지는 알지 못했지만, 그 효과만큼은 정확히 계산할 수 있었다.
뉴턴은 그걸 해냈다.
그 결과, 자연은 더 이상 직관으로 이해하는 세계가 아니게 되었다.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는 세계에서, 숫자와 공식으로 읽어내는 세계로 바뀌었다.
최영도 교수는 창가로 시선을 던졌다.
어느새 해는 져가고, 서재 안엔 부드러운 어둠이 내려앉았다.
"어쩌면 그날 이후, 과학은 우리를 자연에서 조금 더 멀리 떨어뜨려 놓았는지도 모릅니다."
그는 조용히 말했다.
"보이는 세계에서 이해하던 것을, 이제 우리는 보이지 않는 계산으로 설명하기 시작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