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님, 오늘은 어떤 이야기로 시작할까요?"
수현은 노트북을 무릎 위에 올리고, 교수 쪽으로 몸을 살짝 기울였다.
서재 안에는 따뜻한 조명과 찻잔에서 올라오는 김이 잔잔히 퍼지고 있었다.
최영도 교수는 찻잔을 내려놓으며 부드럽게 웃었다.
"오늘은 뉴턴 이전으로 잠깐 돌아가 봅시다."
그는 창가를 향해 잠시 시선을 던졌다.
"그 이전의 과학, 그리고 그들이 수학을 어떻게 썼는지."
수현은 살짝 눈을 빛내며 노트북 화면을 열었다.
"뉴턴 이전의 과학... 기대돼요."
뉴턴은 자신의 업적을 이렇게 겸손히 말했다.
"내가 더 멀리 볼 수 있었다면, 그것은 거인들의 어깨 위에 올라섰기 때문이다."
그 거인은 누구였을까?
바로 코페르니쿠스, 케플러, 갈릴레이였다.
수현은 노트북을 열어 두고 고개를 갸웃했다.
"교수님,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을 내놓았을 때, 그건 정말 큰 혁명이었겠죠?"
최영도 교수는 미소를 지었다.
"그렇죠. 16세기에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건, 정말 세상을 뒤흔드는 말이었어요."
수현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그럼 그때부터 모든 게 확 바뀐 건가요?"
"그게 재미있는 부분이에요."
최 교수는 손가락으로 찻잔을 살짝 돌리며 말했다.
"코페르니쿠스는 태양 중심의 우주라는 발상을 했지만, 정작 궤도를 설명할 땐 여전히 중세 방식에 의존했거든요."
수현은 잠시 멈칫했다.
"중세 방식이요?"
"네. 행성의 움직임을 설명하려고 작은 원이 큰 원 위를 도는 식의 복잡한 궤도를 겹쳐야 했어요.
아이디어는 혁명적이었지만, 수학적 도구는 여전히 옛 그림자 속에 있었던 셈이에요."
수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메모를 남겼다.
"그 말, 뭔가 되게 상징적이네요... 생각은 앞서갔는데, 방법은 아직 과거에 머물러 있었다는 게."
최 교수는 부드럽게 웃었다.
"맞아요. 과학의 진보란, 그렇게 한 번에 모든 게 바뀌진 않으니까요."
17세기의 케플러는 한 발짝 더 나아갔다.
행성의 궤도가 타원이라는 사실,
그리고 행성들이 궤도를 도는 속도가 일정하지 않다는 것.
그는 엄청난 법칙을 발견했지만,
왜 그런지 설명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갈릴레이.
그는 눈을 땅으로 돌렸다.
떨어지는 물체, 구르는 공, 진자의 진동.
갈릴레이는 이 현상들을 실험하고,
수학적으로 표현했다.
그는 "자연은 수로 쓰인 책"이라는 말을 남겼지만,
그 수식은 여전히 제한된 범위에서만 유효했다.
하늘은 하늘대로, 땅은 땅대로, 여전히 두 세계는 연결되지 않았다.
수현은 노트북에서 눈을 떼고, 교수에게 시선을 옮겼다.
"뭔가... 다들 놀라운 걸 발견했지만, 그걸 하나로 꿰지 못했던 거군요?"
"정확해요."
최 교수가 살짝 웃었다.
"그걸 꿰뚫은 사람이 뉴턴입니다."
수현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교수님, 그럼 뉴턴은 어떤 점에서 그렇게 특별했던 걸까요?"
최영도 교수는 찻잔을 살짝 들어 한 모금 마시더니, 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뉴턴은요. 정말 놀라운 통찰을 했습니다.
지상에서 사과가 떨어지는 힘과, 하늘에서 달이 지구를 도는 힘이 같은 거라는 걸 깨달았거든요."
수현의 눈이 동그래졌다.
"같은 거요? 하늘과 땅이요?"
"네."
교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전까지는 사람들이 그 둘을 완전히 별개로 봤습니다.
하늘의 일은 신들의 영역, 지상의 일은 우리 인간의 영역.
그런데 뉴턴은 질량, 거리, 속도 같은 물리량을 정교하게 구분해서, 그 관계를 수식으로 엮어냈어요."
수현은 노트북에 빠르게 메모하다가 멈췄다.
"그래서 만유인력이 탄생한 거군요?"
"맞아요."
교수의 미소가 살짝 번졌다.
"그 순간 처음으로, 하늘과 땅이 하나의 법칙으로 묶인 겁니다.
이건 단순한 발견이 아니었어요. 사고의 전환이었죠."
교수는 잠시 창밖을 바라보다 말을 이었다.
"자연 현상 전체를 관통하는 보편적 법칙.
그건 관측된 패턴을 나열한 게 아니었어요.
수식과 원리로 작동하는, 설명과 예측이 가능한 체계였죠."
수현은 작게 감탄하듯 숨을 내쉬었다.
"와... 그야말로 세상을 보는 눈이 완전히 바뀐 거네요."
교수는 조용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수현 씨. 완전히 다른 세상이 열린 거죠."
수현은 흥미로움과 경외가 섞인 얼굴로 교수에게 물었다.
"그래서 그 말이 나온 거군요. '수는 있었으나, 법칙은 없었다.'"
"맞습니다."
최 교수는 조용히 웃었다.
"뉴턴 이후, 과학은 자연을 법칙으로 읽기 시작했죠."
놀랍게도,
이렇게 만들어진 수식들은 자연을 믿을 수 없을 만큼 정확히 예측했다.
질량, 거리, 속도, 힘.
이 단어들이 가진 숫자들은 단순한 계산을 넘어,
하늘과 땅, 사과와 별의 움직임을 함께 설명해 냈다.
수현은 잠시 펜을 굴리다 멈췄다.
그녀의 표정에는 약간의 망설임과 호기심이 섞여 있었다.
"교수님... 그런데요. 왜 수학은 자연을 그렇게 잘 설명할까요?"
그녀는 천천히 말을 꺼낸다.
"그냥 인간이 만든 도구일 뿐인데, 어떻게 그게 이렇게 잘 맞아떨어질 수 있는 걸까요?"
최 교수는 잔을 들어 찻물을 한 모금 마시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조용히 창가로 시선을 돌린 그의 얼굴에 어둑한 저녁 햇살이 내려앉았다.
"아주 중요한 질문이에요."
그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사실, 과학자들도 그걸 완전히 설명하지는 못합니다.
수학이 자연의 본질인지, 아니면 우리가 자연을 보는 창인지... 그건 다음에 꼭 이야기해 봅시다."
서재 안은 어느덧 부드러운 어둠으로 채워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