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현은 조용히 창밖을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교수님, 수학이 정말 자연을 설명하는 언어일까요? 인간이 만든 건데, 어떻게 그렇게 잘 맞을 수 있죠?"
최영도 교수는 마시던 커피 잔을 조용히 내려놓았다.
"그건 아주 오래된 수수께끼예요. 수학은 원래 인간이 필요해서 만든 도구였죠. 곡식을 세고, 땅을 재고, 농사를 더 잘 짓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런데..."
그는 책상 위에 놓인 나뭇잎 하나를 들여다보면 말을 이었다.
"놀랍게도, 그 도구가 자연을 설명하는데 너무 잘 맞아떨어졌어요. 중력, 궤도, 전염병의 확산, DNA의 구조까지. 수학으로 예측이 가능해졌죠."
수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서 위그너가 그런 말을 했군요. 수학은 기묘한 만큼 자연을 잘 설명한다고요."
최 교수는 미소 지으며 덧붙였다.
"'기묘할 만큼 효과적이다(The unreasonable effectiveness of mathematics in the nature sciences).'
유진 위그너의 말이죠. 그는 물리학자였지만, 이 현상을 두고 오래도록 고민했고, 설명하기 어려운 신비로 받아들였죠. 어떻게 인간의 머리에서 나온 게 자연을 그렇게 정확히 설명할 수 있냐는 거죠."
실제로 수학은 자연의 여러 현상을 설명하는데 탁월한 효과를 보였다.
뉴턴의 운동 법칙, 맥스웰의 전자기 방정식, 슈뢰딩거의 파동 함수까지.
우주의 법칙은 대부분 수학으로 표현할 수 있다.
그런데 그토록 정확하게 들어맞는 이유는 여전히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수현은 노트에 무언가를 적다가 다시 물었다.
"그럼 자연이 원래 수학적인 걸까요? 아니면, 우리가 수학적으로 해석해서 그렇게 보이는 걸까요?"
최 교수는 조금 생각에 잠기더니 천천히 대답했다.
"플라톤은 자연이 본래 수학적이라고 믿었죠. 수학은 발명한 것이 아니라 '발견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자연은 원래 수학이라는 언로 쓰인 책이고, 인간은 단지 그걸 우연히 찾아낸 거라고요."
수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조심스럽게 되물었다.
"반면에 칸트는 다르게 생각했죠?"
최 교수는 미소를 지으며 부드럽게 대답했다.
"네, 그렇습니다. 칸트는 우리가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 자체가 시간과 공간이라는 틀 안에 있다고 보았어요. 수학은 그 인식 구조 안에서 나온 것이지, 자연이 실제로 그런 구조라는 뜻은 아니라고 했죠."
이 논쟁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과연 수학은 '발견'된 것인가, 아니면 인간의 '해석'일뿐인가?
이 질문은 과학과 철학의 경계를 오가는 가장 흥미로운 주제 중 하나이다.
잠시 정적이 흐르다가 수현이 창밖을 가리켰다.
"저기 보세요. 나뭇잎이 줄기를 따라 나선형으로 배열돼 있어요. 이것도 수학적인 패턴 아닌가요?"
최영도 교수는 창밖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맞습니다. 그건 피보나치 수열이라고 하죠."
그는 잔잔하게 웃으며 설명을 덧붙였다.
"벌집의 육각형, 태풍의 소용돌이, 해안선의 들쑥날쑥한 곡선. 이 모든 게 자연의 패턴이고, 그걸 읽어내는 언어가 바로 수학이에요."
브누아 망델브로(Benoit Mandelbrot)는 전통적인 기하학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자연의 복잡한 형태들을 설명하기 위해 ‘프랙털 기하학’을 제안했다. 그는 자연은 직선이나 완벽한 원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고 말하며, ‘자기 유사성(Self-similarity)’이라는 패턴이 반복된다고 주장했다.
수현은 물끄러미 손끝을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런데요. 혹시 우리가 수학적으로 보려고 훈련받아서 그렇게 보이는 건 아닐까요? 어쩌면 수학으로 설명 안 되는 건 애초에 안 보려고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최 교수는 고개를 들며 가볍게 웃었다.
“그럴 수도 있죠.”
그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우리는 물리 법칙이나 에너지 보존 같은 건 수학으로 잘 설명하지만, 사랑이나 고통 같은 건 수학의 영역 밖으로 밀어내잖아요. 우리가 수학의 렌즈로만 자연을 보는 건 아닌지, 한 번쯤 의심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실제로 수학은 ‘설명 가능한 것’에만 작동하는 경향이 있다.
비가시적이고 주관적인 감정, 존재의 의미, 윤리와 같은 개념은 수학적 접근으로 해명하기 어렵다.
이 점에서 수학은 필터이자 한계일 수 있다.
잠시 후, 최 교수는 책장에서 오래된 책 한 권을 꺼냈다.
표지에는 갈릴레이의 문장이 적혀 있었다.
"자연은 수학이라는 언어로 쓰인 책이다."
그는 책을 조심스럽게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이 말, 참 아름답지 않습니까? 우리가 계산을 하고, 공식으로 예측을 한다는 건... 어쩌면 자연이 우리에게 준 언어를 해독하는 일일지도 몰라요."
수현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우주는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거네요. 함수와 방정식으로."
그녀의 말에 최 교수는 조용히 웃었다.
"그래서 수학은 아직까지도 과학이 가진 마지막 마법이라 불리죠. 너무도 잘 맞는데, 왜 그렇게 잘 맞는지는... 여전히 아무도 모른다는 게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