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밖에는 초여름 햇살이 스며들고 있었다.
카페 안은 조용했고, 수현은 잔을 내려놓고 고개를 기울였다.
“교수님,
과학은 왜 이렇게 어려울까요?
그런데 또, 안 배울 수는 없는 것 같아요.
요즘엔 과학을 모르면 대화도 안 되잖아요.”
최 교수는 미소 지으며 물끄러미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수현 씨,
과학은 애초에 깊고 넓은 학문입니다.
어려운 건 당연해요.”
“하지만 저는 학자가 아니니까요.
어떻게 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당연히 있죠.
전문가가 아닌 우리에겐,
과학의 '뼈대'를 먼저 보는 게 좋아요.”
“뼈대요?”
“과학이 어떻게 변해왔는지, 그 흐름을 보는 겁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과학사를 따라가는 거죠.”
과학은 단단한 지식 체계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끊임없이 변해온 사고의 여정이다.
자연을 설명하려는 인간의 오랜 시도,
그 누적된 발자취가 바로 과학사다.
갈릴레오가 하늘을 다시 보았던 순간,
뉴턴이 만유인력을 정식화한 순간,
아인슈타인이 시간과 공간을 뒤집었던 순간들.
이 모든 순간은 단순한 발견이 아니라, ‘패러다임의 전환’이었다.
과학사는 그렇게
세상이 달라 보이기 시작한 순간들의 역사다.
그렇기 때문에 과학을 처음 접할 때,
이해하기 가장 좋은 방식은 사건 중심,
즉, ‘언제, 무엇이, 어떻게 바뀌었는가’를 따라가는 방법이다.
“과학사라... 뭔가 좀 더 스토리가 있는 느낌이네요.”
수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아요.
과학은 사실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 속에서 반복되는 흐름이 있어요.
그걸 우리는 ‘패러다임 전환’이라고 부릅니다.”
“그 말은 익숙한데,
막상 무슨 뜻이냐고 하면 설명하긴 어렵네요.”
“많이들 그렇게 말하죠.
정말 중요한 개념이에요.
토마스 쿤이라는 과학철학자가 설명했죠.
‘과학혁명의 구조’라는 책에서요.”
‘패러다임’이라는 말은 이제 낯설지 않다.
뉴스나 자기 계발서, 강연 등에서도 자주 들을 수 있다.
대체로 이 말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나, 기본적인 생각의 틀을 가리킨다.
“기술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라든가, “기존 패러다임을 깨야 한다” 같은 표현처럼 말이다.
그런데 이 단어가 지금처럼 쓰이게 된 데에는
한 권의 책과 한 사람의 철학자가 있었다.
토마스 쿤.
20세기 과학철학자였던 그는 《과학혁명의 구조》라는 책에서
이 ‘패러다임’이라는 단어에 전혀 다른 깊이를 불어넣었다.
쿤이 말한 패러다임은 단순한 관점이나 사고방식이 아니다.
하나의 시대에 과학자들이 공유하는 문제 풀이의 틀 전체를 가리킨다.
무엇이 문제로 여겨지는지, 어떤 방식이 해답이라 여겨지는지,
그리고 어떤 해법이 ‘좋은 예’로 받아들여지는지까지.
일종의 집단적 사고의 기준선인 셈이다.
이 틀은 한동안 안정적으로 유지된다.
우리는 그것을 ‘정상과학’이라 부른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이 틀로는 설명되지 않는 것들이 조금씩 생기기 시작한다.
마치, 어느 날부터 작은 금이 가기 시작하는 유리처럼.
그러다 어느 순간,
완전히 다른 해석의 방식이 제안된다.
그것이 새 패러다임이고,
기존의 틀을 완전히 갈아엎는 일이 벌어진다.
이때의 전환을 쿤은 ‘과학혁명’이라 불렀다.
예컨대,
지구가 중심이라는 천동설이 당연하던 시절,
코페르니쿠스는 태양이 중심이라는 생각을 꺼내놓았다.
그는 단지 새로운 사실을 덧붙인 게 아니라,
우주를 바라보는 틀 자체를 바꾼 것이었다.
뉴턴의 세계도 그랬다.
오랫동안 자연은 뉴턴의 법칙으로 완벽히 설명된다고 여겨졌지만,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 나오면서
시간과 공간에 대한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다.
이런 변화는 단순히 ‘정보가 더해진 진보’가 아니다.
세상을 해석하는 방식이 통째로 바뀌는 일,
그게 바로 쿤이 말한 과학의 본질이었다.
그는 과학이 단지 사실을 차곡차곡 쌓아 올리는 직선적 발전이 아니라,
한 시대의 사고방식과 그 시대 사람들이 가진 세계관이 맞물려 움직이는 역사적 과정이라고 보았다.
그 생각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우리가 과학을 배울 때 무엇보다 먼저 이해해야 하는 건,
바로 그 틀이 어떻게 바뀌어왔는지,
그리고 그 틀이 왜 그렇게 작동했는지를 아는 일이다.
“어떤 학문이든 기본 개념이 중요하잖아요.
과학의 기본 개념은 바로 이거예요.
‘어떻게 틀이 바뀌어 왔는가’를 이해하는 것.”
최 교수가 조용히 말을 이었다.
“그래서 저는 학생들에게 이걸 먼저 가르칩니다.
수식이나 법칙보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를요.”
수현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교수님,
그 패러다임 전환들이 언제, 어떻게 일어났는지...
그걸 따라가면 되는 건가요?”
“맞습니다.
다음엔 그 역사적 순간들을 하나씩 따라가 보죠.
재미있고, 무엇보다 생각이 깊어질 거예요.”
왜 《과학혁명의 구조》는 이렇게 어려울까요?
이 책은 대중서가 아니라 ‘과학철학’ 전문서입니다
《과학혁명의 구조》는 어렵습니다. 이 책을 읽어본 독자라면 대부분 공감하실 겁니다. 단어는 익숙한데 문장은 낯설고, 어디서부터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감이 잘 오지 않지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이 책은 원래부터 대중을 위해 쓰인 책이 아닙니다. 토마스 쿤은 과학사와 과학철학이라는 전문 분야의 내부 논쟁을 위해 이 글을 썼습니다. 당연히 일반 독자를 위한 배려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글의 구조도 설명보다 논증에 가깝고, 핵심 개념들도 선명하게 구획 지어지기보다는 서로 겹치고 뒤섞인 채로 등장합니다.
‘패러다임’이라는 단어만 해도 그렇습니다. 처음엔 세계를 바라보는 틀로 소개되었다가, 어느 부분에서는 과학자들의 연구 공동체, 어느 부분에서는 문제 해결의 방식, 전형적 사례 등으로 바뀌어 쓰입니다. 실제로 쿤 본인도 훗날 한 논문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패러다임’이라는 단어를 지나치게 넓고 유동적으로 썼다는 비판은 타당하다.”
그만큼 이 책은 처음부터 친절한 지식 안내서가 아니라, 문제 제기와 사유의 틀을 흔들어 놓는 학문적 선언문에 가까운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번역의 문제도 분명 존재합니다
한글 번역본도 사실 쉽게 읽히지는 않습니다. 이는 단순한 번역자의 역량 문제라기보다, 원문 자체가 복잡하고 추상적인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패러다임’, ‘정상과학’, ‘불연속적 전환’ 같은 용어는 직역하면 너무 철학적이고, 의역하면 원래의 개념이 손상될 수 있기 때문에 어느 쪽도 독자에게 명쾌하게 다가가기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꼭 필요한 통찰을 줍니다
《과학혁명의 구조》는 과학의 발전을 ‘진실을 향해 직선으로 나아가는 과정’이 아니라, 사람들이 세상을 이해해 온 방식이 뒤바뀌는 역사적 전환의 흐름으로 본 명저입니다. 갈릴레오, 뉴턴, 아인슈타인으로 이어지는 위대한 과학자들의 발견이 단순히 사실을 더한 것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틀’ 자체를 바꾸었다는 시선은 지금도 여전히 과학을 새롭게 이해하는 출발점이 됩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권하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독자는 어떻게 이 책에 접근해야 할까요?
정답은 오히려 명확합니다. 이 책을 직접 붙잡고 씨름하기보다는, 쿤의 사상을 쉽고 정확하게 풀어 설명한 책이나 해설 자료를 먼저 읽는 것입니다.
예컨대 쿤이 말한 ‘패러다임’이란 단순한 시각이나 관점이 아니라, 한 시대 과학자들이 공유하는 문제 제기 방식, 해석 기준, 모범 사례의 집합입니다. 이 틀은 오랫동안 유지되며 안정적인 과학 활동을 가능하게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기존 패러다임으로 설명할 수 없는 문제들이 점차 쌓이게 됩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완전히 새로운 해석 방식이 등장해 기존의 틀을 무너뜨리는 순간이 오지요. 이것이 쿤이 말한 ‘과학혁명’입니다.
이러한 흐름을 천동설에서 지동설로의 전환, 뉴턴 역학에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으로의 전환 같은 사례를 통해 설명해 주는 책들이 있습니다.
그런 자료를 먼저 읽고 나면, 《과학혁명의 구조》라는 책의 핵심이 과학이라는 것이 단순히 ‘진실을 향해 일직선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세상을 바라보는 틀 자체가 바뀌어온 역사라는 점에서 의미 있다는 걸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됩니다.
과학은 사고의 역사이며, 쿤은 그 사고의 전환점에 집중한 철학자였습니다. 그의 글은 분명 어려웠지만, 우리가 배워야 할 내용까지 함께 어려울 필요는 없습니다. 길은 언제나 여러 갈래가 있습니다. 다만 그 길을 먼저 걸어간 이들이 남긴 조금 더 친절한 길 안내서부터 펼쳐보는 것, 그것이 쿤을 이해하는 가장 현실적인 시작점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