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현은 테이블 위에 놓인 볼펜을 빙글빙글 굴리다가 잠시 멈추었다.
“교수님,
그 흐름이라는 거요.
좀 더 명확하게 말해주실 수 있나요?
그러니까... 언제,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딱딱 짚어서요.”
최 교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그걸 듣고 싶어 할 줄 알았어요.
머릿속에 하나의 흐름으로 그려지게 설명해 볼게요.”
과학의 역사는 수많은 지식의 축적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바뀌어온 이야기다.
그중에서도 생각의 틀을 송두리째 바꾸는 전환점들,
즉 패러다임의 변화가 시대마다 존재해 왔다.
그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과학을 이해하는 새로운 길을 발견하게 된다.
이 흐름의 첫출발은 16세기 ‘과학혁명’이다.
코페르니쿠스는 지구가 아니라 태양이 중심이라는
지동설을 조심스레 제안했다.
그 순간, 인간은 더 이상 우주의 중심이 아니었다.
갈릴레오는 망원경으로 하늘을 관찰했고,
케플러는 행성의 운동을 수학적 법칙으로 설명했다.
그리고 뉴턴이 등장했다.
사과가 떨어지는 이유와 달의 움직임을
하나의 법칙으로 설명한 그는,
자연을 정확하고 예측 가능한 기계처럼 바라보았다.
이것이 바로 ‘기계적 세계관’이라는 패러다임이다.
이 관점은 근대 과학의 토대를 이루며 수백 년간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20세기 초,
아인슈타인이 나타난다.
그는 시간과 공간이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빛의 속도는 변하지 않지만,
그 빛을 바라보는 시점에 따라
시간과 공간이 휘어진다는 주장을 펼쳤다.
상대성 이론은 뉴턴의 세계관을 다시 구성하도록 만들었다.
우주의 틀이 달라졌다.
그런데 동시에, 더 깊은 세계에서
또 하나의 거대한 균열이 일어난다.
양자역학.
전자와 빛은 입자인 동시에 파동이고,
그 상태는 관측되기 전까지 확정되지 않는다.
세상은 더 이상 단단하고 확실한 기계가 아니라,
확률과 가능성으로 움직이는 세계가 되었다.
세상은 더 이상 결정적인 기계가 아니라,
확률과 불확실성으로 가득한 수수께끼였다.
같은 시기, 생명의 세계에서도 또 하나의 커다란 전환이 일어났다.
찰스 다윈의 ‘진화론’은 생명을 바라보는 시선을 근본부터 바꾸었다.
생명은 고정된 형태로 창조된 것이 아니라,
환경과 경쟁, 적응 속에서 변화해 온 역사적 존재라는 사실.
이 관점은 인간 역시 자연의 일부라는 사실을 일깨워주었다.
20세기 중반에는
DNA의 이중나선 구조가 밝혀지며
생명의 비밀은 분자 수준에서 풀리기 시작했다.
유전 정보는 복제되고, 전달되고, 조작될 수 있었다.
이로써 생명은 신비가 아니라 코드와 정보의 문제가 되었다.
진화론과 유전학은 생명을 ‘살아 있는 체계’가 아니라,
‘정보가 흐르고 진화하는 체계’로 이해하게 만든 또 하나의 패러다임이었다.
그러던 중 과학자들은
'혼돈(카오스)'이라는 새로운 개념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아주 작은 변화가 거대한 결과를 낳는다는,
소위 나비효과.
세상은 복잡하고 민감한 시스템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 통찰은 곧 복잡계 과학으로 확장된다.
생태계, 기후, 뇌, 사회, 경제처럼
수많은 요소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복잡한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과학은 더 이상 단일한 법칙보다
관계와 상호작용의 맥락을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또 하나의 전환기 앞에 서 있다.
인공지능,
머신러닝,
딥러닝,
그리고 빅데이터.
이제는 인간이 명령하지 않아도,
데이터가 스스로 패턴을 만들고 미래를 예측한다.
기계는 단순히 계산하는 도구가 아니라,
배우고 판단하는 존재로 진화하고 있다.
“이런 흐름이에요.
과학은 그렇게,
우리를 중심에서 밀어내고,
자연을 기계처럼 보게 만들고,
다시 그 기계조차 불확실하고 복잡하다는 걸 깨닫게 했죠.”
최 교수는 잔잔한 말투로 이어 말했다.
“그리고 지금은... 기계가 스스로 사고하기 시작했어요.”
수현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코페르니쿠스에서,
이제는 인공지능까지...”
말을 멈춘 수현의 눈이 창밖을 향했다.
“한 줄로 보니,
정말 거대한 흐름이네요.”
최 교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부드럽게 말했다.
“그렇죠.
이렇게 패러다임의 큰 흐름을 먼저 잡아두면,
과학이 하나하나의 정보가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의 역사라는 걸 알게 됩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수현은 조용히 다시 물었다.
“그럼 저 사건들… 그 순서대로 공부해 보면 좋은 걸까요?”
“네, 그게 가장 좋습니다.
과학은 순서대로 배워야 한다는 말이 아니라,
생각의 틀이 어떻게 바뀌어왔는지를
그 흐름에 따라 이해해 보는 거죠.
그게 훨씬 오래 기억에 남고,
과학이 왜 그렇게 발전해 왔는지도 자연스럽게 보이거든요.”
수현은 노트 한쪽에 조심스럽게 제목을 써 내려갔다.
“패러다임의 흐름으로, 과학을 읽는다.”
작지만 단단한 글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