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지난 후에야

『힘겨운 하루를 끝낸 당신에게』내용 중에서

by 홍종원

그때가 아쉬운 것은, 더해보지 못했던

나만의 현실로 인해 더욱 아련하게 남는 것 같다.

내가 그녀를 바라보던 그 시절,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이 마음을 꺼내 보인다고 해서

달라질 수 있는 건 없다는 걸.

현실은 내게 너무 무거웠고,

그 무게는 말보다 먼저 내 어깨를 눌러 앉았다.

가진 것도 없었고, 보여줄 것도 없었고,

그녀가 있는 세계와 나는 애초에 다르게 자라난

나무처럼 보였다.

그래서 감히 손을 뻗지 못했다.

그저 멀찍이 서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해야 했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런 나의 처지가

이 사랑을 더 지우기 어렵게 만든다.

그 감정이 이루어졌더라면,

지금처럼 오래 기억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때의 나, 그때의 거리,

그리고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가슴속에 고이 감춰둔 말 한마디가

시간이 지날수록 더 선명하게 살아난다.

어쩌면 첫사랑은 그런 것이다.

사람보다 감정이 남고,

감정보다 상황이 기억을 오래 붙잡는다.

나는 그 사람을 사랑했던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그때의 나,

그리고 끝내 다가가지 못했던

그 미련을 사랑하고 있었던지도 모른다.

사랑은 종종 말을 건네지 못한 순간에 머문다.

나는 말하지 않았고, 그녀는 몰랐으며,

우리는 그렇게 스쳐갔다.

그리고 그 감정은 시간이 지난 후에야

사랑이었다는 이름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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