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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재건의 땅

by 홍종원

백두산이 무너졌을 때, 사람들은 더 이상 그 산을 ‘산’이라 부르지 않았다. 정상은 사라지고, 설경은 재로 덮였으며, 거대한 분화구가 산의 심장을 갈라놓고 있었다. 굳지 않은 용암은 검붉은 선이 되어 능선을 타고 흘러내렸고, 백두 능선의 윤곽은 흉터처럼 찢겨 있었다.


그러나 무너진 것은 산만이 아니었다. 분화의 충격파는 주변의 도로를 끊어 놓았고, 송전탑은 연쇄적으로 쓰러졌다. 계곡을 따라 살던 가옥들은 흙과 화산재에 묻혔고, 숲은 나무가 아니라 재로 이루어진 그림자만 남겨두고 있었다. 백두산은 더 이상 신령의 터전이 아니라, 수만 명의 삶이 사라진 거대한 단절이었다.


그 잿더미 위에, 가장 먼저 모습을 드러낸 건 군복을 입은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그들 뒤를 따르는 수백 대의 굴삭기와 트럭, 현장모를 쓴 인부들이었다. 누군가 ‘복구’라는 말을 입에 올린 적은 없지만, 그들은 도로를 잇고, 전력선을 되살리고, 끊긴 삶의 동맥을 다시 연결하고 있었다. 그들의 움직임은 묵묵했지만 분명했다. 이곳은 끝이 아니라 다시 시작될 자리임을, 몸으로 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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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진 도로 위에는 임시 모듈러 구조물이 세워졌고, 끊어졌던 철로에는 다시 신호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북부 전력망을 복구하는 공사에는 군, 지방정부, 공기업, 해외 기술진까지 총출동했다. 마치 한 국가의 모든 손이 동시에 뻗어 나온 것처럼, 재건은 국가, 지방, 민간, 국제 파트너십이 동시에 작동하는 거대한 작동망이었다. 그러나 그 복구는 단순한 되돌리기가 아니었다. 지워진 것을 ‘다시 쓰는’ 일이었다.


그리고 이제 한반도는 2,500만 명의 새로운 인구를 품은 나라가 되어 있었다. 시장은 커졌고, 삶은 넓어졌고, 땅은 다시 말하기 시작했다. 도로는 하루가 멀다 하고 뻗어나갔고, 철도는 산을 가르고 연결되었으며, 전기와 인터넷, 상하수도 같은 기본 인프라도 거침없이 땅속을 파고들었다. 해안가마다 항만이 정비됐고, 쓰러졌던 활주로는 복구되었으며, 이름 없는 벌판 위에도 새로운 공항이 하나둘씩 세워졌다.


무너졌던 북부는 이제, 무너졌기에 가능한 기회의 땅이 되었다. 모든 것이 사라졌기에, 어떤 것도 새로 만들 수 있었다. 그 땅은 넓었고, 규제는 느슨했으며, 억눌렸던 개발의 욕망은 기적처럼 분출되고 있었다.


남쪽에서 축적해 온 신도시 건설 기술, 스마트 인프라, 자율주행 교통망, 에너지 자립형 주거 모델. 그 모든 실험이 이제, 이론이 아닌 땅 위에서 현실이 되는 순간을 맞이하고 있었다. 어느 누구도 발목을 잡을 규제도, 예산 심의도 없었다.


이곳은 가능성이 규칙을 대신하는 땅이다.
그 말은 정부 고위 관료의 입에서 흘러나왔다고도 했고, 현장 건설 책임자의 메모지에 적혀 있었다고도 했다.


알려지지 않았지만, 정부는 이미 오래전부터 ‘포스트 분단 도시계획안’을 비공식적으로 준비해 두고 있었다. 다만 실행할 기회가 없었을 뿐이었다. 그 기회는 이제 현실이 되었다. 건설업계는 이곳을 ‘꿈의 지역’, 젊은 기술자들은 ‘국가 실험실’이라 불렀다. 붕괴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설계의 출발점이었다.


백두산 재건 현장에서 가장 크게 달라진 건 콘크리트나 철근이 아니었다. 달라진 것은 사람들의 생각 방식이었다. 정부는 처음엔 북부 지역 자원 점검을 위해 임시팀을 꾸렸지만, 첫 보고서가 도착하자 ‘임시’라는 단어는 사라졌다.
희토류, 마그네사이트, 리튬.
예전에는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이었지만, 이제는 눈앞의 자원이 되어 있었다.


그 변화를 상징하듯, 한 관료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 우리는 그 자원을 그냥 팔지 않습니다. 우리가 직접 가공하고 만듭니다.
예전 같았으면 땅에서 캔 자원을 그대로 해외에 넘겼을 것이다. 그러면 그들이 정제하고 가공해 제품으로 만들어 되팔았다. 그러나 지금은 흐름이 완전히 반전되고 있었다.


광산에서 나온 광물은 항구가 아니라 연구소로 향했다. 연구소는 기술을 만들었고, 공장은 그것을 부품과 완제품으로 바꾸었다. 어떤 자원은 배터리가 되었고, 어떤 자원은 반도체·로켓 엔진의 심장부가 되었다. 채굴에서 발사체까지, 모든 단계가 한반도 내부에서 순환하고 있었다.


이제 자원은 ‘수출 상품’이 아니라 국가 시스템을 움직이는 연료가 되었다. 그 변화는 곧 국가의 정체성을 바꾸었다. 과거 대한민국은 수출 의존도 70%의 나라였다. 외부 경제 충격에 가장 먼저 흔들리고, 가장 늦게 회복하던 구조였다.


그러나 통일 이후, 산업 지도는 완전히 다시 그려졌다. 자원은 제조를 움직였고, 제조는 에너지 산업을 확장시켰다. 에너지는 다시 첨단 기술의 토대가 되었다.


이 흐름은 직선이 아니었다. 자원이 공장을 돌리고, 공장이 전력을 만들고, 전력이 기술을 키우고, 기술은 다시 자원을 더 깊이 활용하게 했다. 그 순간, 한반도는 바깥에 의존해 버티는 나라가 아니라, 안에서 순환하며 성장하는 나라가 되었다.


이제 한반도는 ‘밖에서 들여와 버티는 나라’가 아니라, 안에서 순환하며 스스로를 밀어 올리는 나라가 되었다. 예전에는 희토류가 중국을 거쳐야 반도체가 만들어졌지만, 지금은 북부 산맥에서 채굴된 광물이 남부 공장에서 반도체와 배터리, 우주항공 부품으로 변하고 있었다. 그제야 사람들은 처음으로 깨달았다.
“산업이 한반도 내부에서 완전히 순환하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깊이 달라진 것은 국가의 구조가 아니라, 사람들의 인식이었다. 예전의 한국은 스스로를 작다고 여겼다. 지정학의 틈바구니, 강대국들 사이에서 떠밀리는 땅. 전쟁의 피난처이자, 수출에 의존해 생존하던 나라. 그래서 늘 조심했고, 늘 설득했고, 늘 외교에 기대어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자원을 가진 국가. 제조를 독립적으로 해낼 수 있는 국가. 에너지와 방위까지 스스로 감당할 수 있는 국가. 그 순간, 국민의 눈빛이 달라졌다.


그날, 누군가 조용히 말했다.
“이건 단순한 회복이 아니야… 완전히 다른 길로 접어든 느낌이야.”
곁에 있던 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였다.
“그래. 이제 여긴 예전의 한국이 아니지. 완전히 새로 시작된, ‘제3의 한국’이라는 게 맞을 거야.


그 말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었다. 이것은 국가의 재건이 아니라, 시스템의 리셋이었다. 과거로 돌아가는 복원이 아니라, 과거에 존재한 적 없는 문명으로의 진입이었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그 출발점은 가장 깊은 붕괴의 자리에서 시작되었다. 무너진 땅 아래에서, 문명은 다시 숨을 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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