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군이 압록강을 건넌 건 5월 중순이었다. 열흘 뒤, 러시아군도 나진을 정리하고 두만강을 넘어갔다. 동북쪽 경계에서 시작된 움직임은, 조용하지만 분명한 흐름이었다.
미국의 항공모함 전단은 그보다 늦은 6월 초, 동해를 천천히 빠져나갔다. 위성사진 속 갑판 위로 전투기들이 줄지어 선명히 정렬돼 있었고, 방송 자막은 반복적으로 ‘질서 있는 퇴장’을 강조했다. 그러나 그것은 한 시대의 휘장을 내리는 장면에 가까웠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주한미군의 마지막 수송기가 오산 기지를 이륙했다. 프로펠러가 회전하는 소리는 군악대의 송별곡보다 깊고 무거웠다. 비행기에 오르던 미군 병사들은 차례로 뒤를 돌아보며 손을 흔들었고, 그 손짓 하나하나에 지난 90년의 시간이 담겨 있었다. 지금 떠나는 이들은 단지 병력이 아니라, 한국 현대사의 가장 오래된 그림자였다.
이제 대한민국의 영토엔 그 어떤 외국 군대도 존재하지 않았다. 국경은 오롯이 우리가 지켜야 할 선이 되었고, 우리는 드디어 완전한 국토의 주권을 되찾았다.
확장된 북방 경계는 넓었고 험했다. 백두산 자락에서 시작된 감시선은 동해와 서해를 거쳐 압록강과 두만강까지 이어졌고, 군은 새로운 지도 위에 낯선 배치도를 그려야 했다.
지켜야 할 선은 길어졌지만, 방어의식은 오히려 굳어졌다. 타인의 그늘에서 벗어나 처음으로, “우리는 우리 힘으로 국경을 지킨다”는 인식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그건 단순한 전략의 변화가 아니라, 의존에서 자립으로 건너가는 한 국가의 태도 변화였다.
통일 한국의 준비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남은 과제는 오직 하나, 유엔 총회에서 ‘대한민국’을 하나의 국가로 공식 승인받는 일이다. 그 순간은 총이 아닌 외교의 언어로 마침표를 찍는 일이고, 분단의 시대를 정치의 무대에서 마무리 짓는 최후의 장면이다.
뉴욕, 유엔 본부.
거대한 유리 돔 아래, 193개국의 국기가 반원형으로 늘어서 있었다. 각국 대표들의 좌석은 여느 때처럼 정돈되어 있었지만, 이날의 공기는 분명 달랐다. 일부 대표는 조용히 속삭였고, 몇몇은 손끝으로 태블릿을 넘기며 긴장된 시선을 무대 앞으로 보냈다.
그날 가장 많은 시선을 받은 것은 단 하나의 깃발이었다. 붉은 곡선과 푸른 곡선이 마주 도는 태극기.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으로 통일된 한반도의 상징이었다.
장내가 조용해졌다. 의장이 가볍게 망치를 들어 의사봉 위를 두드렸다. 짧고 묵직한 소리가 둥그런 회의장을 울렸다.
“다음 안건은 대한민국을 한반도 전역의 유일한 합법 정부로 인정하고, 유엔 내 남북한 의석을 통합하는 승인 결의안에 대한 표결입니다.”
그의 목소리는 절차를 고지하는 관료적 어투였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는 세계사의 분기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발언권은 공동 제안국 중 하나인 일본 대표에게 먼저 부여하겠습니다.”
잠시 정적이 흘렀고, 이어 한 남성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본 국기가 배경으로 놓인 좌석.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유엔 본부는 그날, 또 하나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었다. 일본 외무상은 단상에 올랐다.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우리는 역사 속에서 깊은 상처와 갈등을 겪어왔습니다. 그러나 오늘, 일본은 새로운 시대를 제안합니다. 통일된 대한민국은 더 이상 분단의 상처가 아닌, 평화의 증거입니다. 우리는 이 자리를 통해, 그들의 통일을 정식 국가로서 승인해 줄 것을 국제사회에 촉구합니다.”
그의 마지막 말은 정중하면서도 단호했다.
“일본은 통일 대한민국과 미래를 함께 하겠습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의장은 다음 발언국으로 미국, 중국, 러시아 순서로 차례를 부여했다. 세 국가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답했다. 미국 대표는 “민주주의적 절차와 국제적 투명성을 바탕으로 한 통일”이라며 조건부 지지를 표명했고, 중국은 “한반도의 새로운 균형이 동북아 평화에 기여하길 바란다”며 중립적 입장을 유지했다. 러시아는 “대한민국과의 경제 협력과 유라시아 관문 역할을 기대한다”며 협력 의지를 밝혔다.
그리고 마침내 표결이 시작되었다. 의장은 천천히 발표했다.
“찬성 157, 반대 3, 기권 28.
본 총회는 대한민국 정부를 한반도 전체를 대표하는 유일한 합법 정부로 승인합니다.”
순간, 본회의장에 박수가 터져 나왔다. UN 깃발 옆에 선 한국 대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천천히 단상에 올랐다. 잠시 숨을 고른 그는 차분히 말했다.
“존경하는 각국 대표 여러분,
오늘 이 자리에서 우리는, 분단을 넘어 하나 된 대한민국으로 섰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느 진영에도 기대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택한 길은 균형의 외교이며, 평화를 지키는 책임의 외교입니다. 동북아는 여전히 불안정한 바다 위에 떠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그 바다를 잔잔하게 만드는 추이자, 균형의 닻이 되고자 합니다. 힘은 있지만, 그것을 앞세우지 않는 용기. 우리는 그 용기로 세계와 협력하며, 평화를 유지하겠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문장은, 한 시대의 종언을 알리는 동시에 다음 시대의 서막을 알리는 선언이었다.
“오늘 이 자리를 통해, 대한민국은 평화와 존엄을 지키는 세계의 일원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감사합니다.”
그 순간, 세계는 목격했다. 하나의 민족이 분단 90년의 긴 대립과 상처를 넘어 마침내 스스로를 회복해 낸 모습을. 이념과 전쟁, 냉전과 침묵이 가로막았던 두 개의 이름은 이제 하나로 합쳐졌고, 그 이름은 더 이상 과거의 울타리가 아니라 미래를 향한 연대였다. 통일은 선언이 아니라, 생존과 화해, 그리고 긴 인내 끝에 얻은 합의였다. 그리고 그날, 인류는 새로운 대한민국의 첫 발걸음을 지켜보았다.
UN 본회의가 끝난 직후, 안보리 특별 확대회의가 소집되었다. 의제는 단 하나였다. 통일 대한민국의 핵 보유 현황과 그 국제적 관리 방안. 미국, 중국, 러시아, 유럽 주요국, 그리고 국제원자력기구(IAEA) 대표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기록은 공식 회의록으로 남겨졌고, 회의장은 평소보다 더 정제된 긴장으로 가라앉아 있었다.
대한민국 외교장관이 먼저 발언권을 얻었다. 목소리는 또렷했고, 문장은 준비되어 있었다.
“통일 대한민국은 북한이 개발·보유하던 핵무기를 현재 안전하게 관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를 해체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명확히 말씀드립니다. 이 무기는 결코 위협이 아니라, 침략을 억제하기 위한 수단입니다. 대한민국은 평화를 위협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지킵니다.”
이어 국방장관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테이블 위의 한 페이지 분량 문서를 천천히 펼쳐 보이며 말했다.
“이것은 통일 대한민국이 국제사회에 제출하는 감시 수용 계획안입니다. 우리는 IAEA를 포함한 국제 핵사찰 체계를 전면 수용하며, 모든 핵 시설의 위치와 관리 상태를 정기적으로 보고할 것입니다. 핵무기는 보유하되, 사용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제도화된 감시 체계로 증명하겠습니다.”
순간, 회의장은 조용해졌다. 미국 대표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고, 러시아 대표는 준비해 온 메모를 닫았다. 중국 대표는 짧게 말했다.
“당신들이 그 힘을 끝까지 평화를 위해만 사용하기를 바랍니다.”
그 말은 동의이자 경고, 그리고 동시에 새로운 시대를 향한 묵시적인 신뢰의 문장이었다.
그리고 며칠 뒤, 마지막 공식 일정이 남아 있었다. 미군은 철수했고, 중국군과 러시아군도 이미 국경을 넘었다. 대한민국은 더 이상 그 어떤 외국 군대도 머물지 않는, 완전한 주권국가로 거듭났다.
서울 광장.
수만 명의 시민이 몰려든 자리 위로 대통령의 전용 차량이 도착했고, 붉은 카펫 위로 윤현우 대통령이 조용히 걸어 나왔다. 광장 중앙에 세워진 연단 위에 그가 섰을 때, 사방은 숨죽인 듯 고요했다. 그는 마이크를 잡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국민 여러분.
오늘 우리는 마침내 통일 대한민국의 완성을 선언합니다. 이제 이 땅에는 하나의 정부, 하나의 국민, 하나의 이름만이 존재합니다. 분단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고, 우리는 다시 하나가 되었습니다.”
잠시 숨을 고르던 그는, 다음 문장을 또박또박 이어갔다.
“정부는 오늘, 6월 30일을 ‘통일의 날’로 제정합니다. 이 날은 우리 민족이 스스로의 힘으로 갈라진 세월을 봉합한 날이며, 외세가 떠나고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지킨다고 선언한 날입니다.”
순간, 광장은 거대한 숨결처럼 일렁였다. 사람들이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고, 어떤 이는 조용히 눈시울을 닦았다. 거대한 스크린에는 UN 본부의 장면이 다시 재생되고 있었다.
윤현우 대통령은 단상 위에 서서 마지막 문장을 힘 있게 전했다.
“앞으로 우리는 강한 국력을 바탕으로, 다시는 외세에 의해 이 나라의 운명이 결정되는 일을 허락하지 않겠습니다. 우리는 분단과 고통의 역사를 기억하며, 그와 같은 운명에 처한 국가들을 외면하지 않을 것입니다. 대한민국은 앞으로, 동북아를 넘어 모든 나라가 평화 속에 공존할 수 있는 세상을 위해 기여하고 행동하는 국가가 되겠습니다.”
대통령의 마지막 다짐이 울림처럼 퍼져나가자, 광장 어딘가에서 누군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이제부터… 진짜 시작인 건가.”
그 목소리는 미약했지만, 하늘 높이 휘날리는 태극기 아래에서, 그 한마디는 곧 모두의 마음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