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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제3의 한반도

by 홍종원

통일이 이루어진 지 5년, 한국은 더 이상 예전의 나라가 아니었다. 한때 국회 청문회와 경제 포럼마다 반복되던 단어, “저출산”, “인구 절벽”, “국가 소멸 위험” 같은 말은 사라졌다. 통계청이 발표한 수치는 숫자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대한민국 인구 구조 정상화.”
그 문장은 30년 동안 어느 정부도 쓰지 못했던 문장이었다.


변화는 인구에서 시작되었다. 북부 지역에서 편입된 300만 명의 청년층이 노동력과 병역, 연구개발의 중심축으로 자리 잡았다. 서울과 평양의 대학생들이 같은 연구소에서 인공지능을 개발했고, 함흥 출신의 엔지니어가 부산 조선소 설계팀을 이끌었다. 인구 구조는 단순히 ‘늘어난 수’가 아니라 공동 체제를 움직이는 새로운 동력이 되었다.


출생률도 변하기 시작했다. “통일이 출산율을 바꿀 수 있겠느냐”던 회의론은 조용히 사라졌다. 국가가 사라질까 두려워 낳지 않던 시대는 끝났고, 미래가 다시 열릴 것이라 믿으니 아이가 돌아왔다. 사람들은 그제야 깨달았다. 한 사회의 출산율은 경제가 아니라 ‘희망’에 의해 결정된다는 사실을.


경제도 함께 확장되었다. 이전의 한국이 외부 수출에 의존해야 성장할 수 있는 압축 구조였다면, 지금의 한국은 내부 시장이 스스로 수요를 만드는 자생형 구조로 바뀌었다. 북부 지역은 새로운 소비지이자 생산거점이 되었고, 그 덕분에 한국은 20세기형 수출 단일 축 경제에서 ‘내부–외부 쌍축 성장 모델’로 전환했다.


국가 GDP 성장률은 8.7%, 북부 산업 성장률은 21.4%에 도달했다.
1인당 GDP는 4만 9천 달러에서 불과 5년 만에 6만 달러를 눈앞에 두게 되었다.


사람들은 그것을 기적이라 불렀다. 그러나 그것은 한강의 기적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그것을 이렇게 불렀다.
“대동강의 기적.”




대동강 기적이라는 이름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었다. 평양, 함흥, 청진, 혜산에 들어선 신도시는 ‘재건’이 아니라 ‘건설’이었다. 폐허 위에 다시 세우는 것이 아니라, 아예 새로운 경제 구조를 처음부터 설계하는 작업이었다.



북부 지역은 더 이상 지원과 복지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곳은 한국 경제의 실험실이자 미래 산업의 전초기지가 되었다. 남한이 광기에 가까운 부동산 가격과 포화된 산업 구조에 갇혀 있었다면, 북한 지역은 ‘사상 최초의 빈 땅’이었다. 그 여백은 기술, 사회, 도시 구조까지 완전히 새로 설계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건설사들은 그곳을 ‘꿈의 시장’이라 불렀고, 대학 연구소들은 도시 단위 AI 교통망, 무탄소 에너지 도시, 국경 없는 디지털 행정 실험을 진행했다. 국가가 아닌, 도시 단위 모델로 미래를 구현할 수 있는 곳. 그것이 바로 통일 이후의 북부였다.


군사력도 변했다. 전쟁을 대비하는 방식이 아니라, 전쟁 자체를 낡은 비용으로 만드는 방식이었다. 한국의 군사 구조는 세 겹의 억제 체계로 완성되었다. 먼저, 핵전력과 EMP(전자기 펄스)를 기반으로 한 전략 억제 능력이 국가의 최후방어선을 형성했다.


그 위에는 극초음속 미사일을 중심으로 한 선제 차단 전력이 구축되어, 위협이 발화되기 전에 무력화할 수 있는 능력을 확보했다. 마지막으로, 모든 전력을 통합·운용하는 AI 지휘 체계 기반의 초지능형 방어망이 전체 방어 구조를 하나의 유기적 시스템으로 묶어냈다.


그 결과 군사력 지수는 세계 4위에 올랐고, 핵 보유는 ‘자주권’이 아니라 국제 공동관리체제 속 억제 자산으로 재편되었다. 그것은 무기가 아니라 균형 장치가 되었다.


한국은 다시는 외세의 힘에 나라의 운명이 좌우되던 시절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 답은 단순했고, 동시에 결연했다. 군사력으로 스스로를 지키고, 경제력으로 세계와 연결되는 나라. 이 두 축이 살아 있는 한, 한반도의 미래는 더 이상 누구의 손끝에서 결정되지 않는다.




한국은 세계를 향해 새로운 기치를 내걸었다.
“한반도는 더 이상 빌거나 의존하는 국가가 아니다. 힘으로 남을 누르지 않고도,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나라다.”


그 선언은 외교적 수사나 정치적 연설이 아니었다. 그 문장 뒤에는 또 하나의 문장이 함께 떠올랐다.
“우리는 홍익인간(弘益人間)을 21세기 방식으로 실현한다.”
그 말은 교과서 속 구절을 끄집어낸 것이 아니었다. 한국은 실제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국가는 ‘세계 빈국 지원 기금’을 설립했다. 아시아와 아프리카에 남아 있던 경제적 식민지의 후유증을 지운다는 목표를 걸고. 그들은 빚을 탕감해 주는 나라가 아니라, ‘스스로 일어설 수 있는 시스템’을 수출하는 나라가 되었다.


한국이 내놓은 첫 모델은 단순한 원조가 아니었다. 학교 몇 개를 지어주고, 도로 몇 개를 포장하는 방식도 아니었다. 한국은 교육·기술·금융·전력망·디지털 행정이 함께 들어가는 완전한 ‘국가 자립 패키지’를 제안했다.


“우리는 돈을 주는 나라가 아니라, 다음 세대를 세우는 나라가 되겠다.”
그것이 한국이 내린 결론이었다.




국제사회는 이 새로운 정체성을 이렇게 불렀다.
“제3의 한반도.”



냉전의 전선 위에 묶여 있던 한반도도 아니고, 수출 경쟁에 매달리던 산업국가도 아니고, 분단과 전쟁의 상처에 갇혀 있던 그 옛 한반도도 아니었다. 이 나라는 경제력, 억제력, 윤리, 그리고 철학을 동시에 갖춘 국가였다. 과거로부터 도망쳐온 나라가 아니라, 미래에서 스스로를 다시 설계한 나라였다.


그 정체성을 가장 명확히 말한 것은 지도자의 한 문장이었다.
“우리는 과거의 한반도를 기억합니다. 그러나 다시 그 시대로 돌아갈 이유는 없습니다. 우리는 ‘살아남는 나라’가 아니라, ‘살리는 나라’가 되겠습니다.”


그 말은 약속이 아니라, 이미 현실이 되어 흐르고 있는 제3의 한반도에 대한 정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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