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자 미상의 『하늘이 내린 싸움』 중에서 2편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그 누구도 하늘의 뜻을 의심하지 않았다
바람이 들판을 가르고 있었다.
먼 산 너머로 이웃 부족의 불꽃이 하늘을 물들이고, 밤새 짐승들조차 숨죽였다.
그날은 달조차 어둡고, 별빛도 숨어 있었다.
전령이 도착했을 때, 마을은 이미 알고 있었다.
전쟁이 시작될 것이다.
장로들은 침묵 속에서 원형의 돌판에 둘러앉았다.
말없이 땀을 닦는 노인, 창을 손질하는 젊은 전사, 그리고 울음을 삼키는 어미들.
그 한가운데, 샤먼 '아르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짙은 회색 천으로 두 눈을 가리고 있었다.
천 끝자락에는 오래 묵은 연기의 냄새가 배어 있었고,
그 아래로는 이마 위 점점이 찍힌 검붉은 잉크 자국이 희미하게 번지고 있었다.
그녀의 어깨와 팔, 가슴을 타고 흐르는 문양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었다.
얇은 조각칼로 직접 그은 상처 자국이었고,
그 위에 굳어 붙은 피는 검붉은 껍질처럼 갈라져 있었다.
피는 어제 새긴 게 아니었다.
며칠 전부터 몸을 비우고 기도하며 그려온 것이었다.
그 문양들은 하늘과 땅, 불과 물, 그리고 생과 죽음을 상징하는 기호들.
그녀의 살 위에서 살아 있는 언어처럼 불규칙하게 이어졌고,
피부는 고통에 익숙한 듯 미동조차 없었다.
모닥불 앞에 앉은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기울였다.
마치 들리지 않는 소리,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듣기라도 하듯,
눈가를 감싼 천 아래에서 그녀의 눈동자가 떨렸다.
그녀의 호흡은 낮고 길었고,
입술은 움직이지 않았지만 입 안에서 뭔가를 중얼대는 듯 미세하게 떨렸다.
한참 만에, 그녀가 입을 열었다.
목소리는 마른 나뭇가지가 부러질 듯 건조했지만, 낮고 단단했다.
“하늘에 묻는다.
오늘, 이 전쟁은 우리를 어디로 데려갈 것인가.”
그녀는 두 손으로 짐승의 넓적한 뼈를 들어 올렸다.
마치 그것이 하늘의 귀라도 되는 듯, 조심스럽고 정중하게, 모닥불 위로 높이 들어 올렸다.
뼈에는 까맣게 그을린 자국이 있었고, 가장자리는 오래된 금처럼 갈라져 있었다.
그 순간이었다.
바람이 갑자기 멎었다.
불꽃이 일제히 한쪽으로 휘청였고, 나무 타는 소리가 뚝 그쳤다.
숨을 들이켜던 어른들이 멈췄고, 아이들은 놀라움에 눈을 크게 뜬 채 어미들의 뒤로 물러섰다.
주변의 모든 것이, 마치 그 짧은 순간, 하늘의 대답을 기다리는 하나의 귀가 된 듯 정지해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손에서 뼈가 떨어졌다.
딱.
작은 소리였지만, 들판 전체에 울리는 듯했다.
그 소리에 사람들의 어깨가 미세하게 떨렸다.
누군가는 입을 틀어막았고, 누군가는 눈을 감았다.
샤먼 아르나는 고개를 들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하늘이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더 이상 인간의 말처럼 들리지 않았다.
그것은 마치 하늘의 숨결이 그녀의 목을 빌려 흘러나오는 것처럼 맑고 차가웠다.
“우리는 이긴다.
하늘은 우리와 함께 있을 것이다.”
순간, 침묵은 무너졌다.
숨죽인 긴장이 터지듯, 누군가는 울고, 누군가는 웃었다.
전사들은 한쪽 무릎을 꿇고 땅에 이마를 댔다.
그들의 이마는 땅의 냄새를 기억하고, 그들의 심장은 하늘의 뜻에 복종했다.
어머니들은 조용히 자식의 어깨를 안았다.
"두려워 말거라. 하늘이 너를 지켜보신다."
그 밤, 부족의 전사들은 신탁을 들고 싸움터로 향했다.
그들에겐 검이 있었고, 창이 있었고, 무엇보다 '믿음'이 있었다.
그 믿음은 단단한 방패처럼 마음을 지켜주었고,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게 했다.
그 누구도 하늘의 뜻을 의심하지 않았다.
불꽃이 꺼진 후
해가 뜨기도 전에 전쟁은 끝났다.
그러나 들판은 여전히 어두웠다.
불에 탄 시신들이 줄지어 누워 있었다.
피는 마른 채 흙과 엉겨 붙었고, 바람은 사라진 숨결을 건드렸다.
이긴 자들은 창을 거두었고, 진 자들의 마을은 이미 불길에 삼켜지고 있었다.
적의 남자들은 모두 처형됐다.
목은 잘려 높은 언덕에 매달렸고, 피는 작은 개울을 따라 흘러들었다.
여자들과 아이들은 묶인 채로 마을로 끌려왔다.
울음을 멈춘 사람들만이 남아 있었다.
아르나는 말없이 그 모습을 지켜봤다.
그녀는 이 전쟁이 이길 것임을 예언했지만,
지금 눈앞의 장면은 승리라기보다, 살아남은 자들이 서로를 어떻게 갉아먹는지를 보여주는 듯했다.
부족 한 전사가 말했다.
“우리가 졌다면, 저 자리에 우리 부모, 우리 누이, 우리 아이들이 있었을 거야.”
그는 목소리를 낮췄지만, 누구보다도 또렷하게 들렸다.
옆에 있던 다른 전사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그들을 죽이는 게 두렵지 않았지. 안 그랬다면… 우리가 저들처럼 됐을 테니까.”
그 말에 누구도 반박하지 않았다.
이긴다는 건 살았다는 뜻이었고,
살았다는 건 누군가를 죽였다는 뜻이었다.
샤먼 아르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하늘은 우리에게 승리를 주었지만, 그것은 피로 지불해야 하는 거래였다.’
그녀는 하늘에 묻고 싶었다.
과연 이것이 옳은 일이었는지.
밤이 되자, 마을엔 불이 켜졌다.
고기 굽는 연기 사이로, 아이들의 울음이 스며들었다.
노래가 불려졌지만, 그 노래는 오래전 전쟁의 노래였다.
슬픔과 승리, 복수와 두려움이 뒤섞인 노래.
죽은 전사를 기리는 제사에서 장로는 말했다.
“살아남은 자는 감사하라. 오늘 우리가 이겼기에, 우리의 아이들이 울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누구도 말하지 않았지만,
모두는 알고 있었다.
패한 자들의 비명은 곧, 우리의 미래일 수도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흔히 그렇게 말한다.
"옛날 사람들은 미개했다."
하늘을 두려워했고, 별자리에 길흉을 물었고, 샤먼의 말 한마디에 삶과 죽음을 걸었다고.
지금 우리의 눈엔 어리석어 보인다.
너무 감정적이고, 너무 비과학적이다.
하지만 정말 그랬을까?
그들이 살아가던 세상은 지금과는 달랐다.
질병의 원인을 몰랐고, 하늘의 비는 예측할 수 없었고, 전쟁은 언제든 들이닥쳤다.
미개한 것이 아니라, 너무 많은 것이 보이지 않았던 시대였다.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예언을 찾았다.
그것은 미래를 미리 알기 위한 욕심이 아니라, 두려움을 이겨내기 위한 본능이었다.
예언은 칼이 아니었고, 방패도 아니었다.
하지만 어디로 가야 죽지 않는지,
언제를 피해 움직여야 살아남는지를 알려주는 하늘의 징후였다.
별을 읽는 일도 마찬가지였다.
점성술은 하늘을 향한 기도가 아니라, 세상의 리듬을 읽으려는 생존의 감각이었다.
별들의 움직임 속에서 사람들은 조짐을 찾았고,
그 조짐은 흉한 날과 길한 날을 가르는 지도가 되었다.
샤먼은 신의 목소리를 대신 전하는 자였다.
하지만 그들은 신이 아니라, 사람들의 고통을 가장 먼저 감지하는 자들이었다.
질병과 가뭄, 전쟁 앞에서 먼저 앓고, 먼저 떨며,
그 불안을 언어로 바꿔 전해주는 자들이었다.
신탁은 그저 신비로운 말이 아니었다.
그것은 마을을 지키기 위한 결정의 도구였고,
살아야 할지, 싸워야 할지, 도망쳐야 할지를 묻는
가장 실용적인 생존의 기술이었다.
예언도, 점성술도, 샤먼도, 신탁도
그 시대 사람들에게는 모두 살기 위한 방법이었다.
믿음이 아니라, 선택이었다.
그 선택은 종종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내려졌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을 비웃어선 안 된다.
예측에 의지한 것은 단지 미개해서가 아니었다.
그건 생과 사를 가르는 절박한 선택이었다.
살아남기 위한 유일한 길이었다.
그들에게 예언은 살기 위한 최후의 선택이었다.
지금 우리가 기후모델과 인공지능 예측을 통해 불확실성을 줄이려 하듯,
그들도 자기 방식대로 세상을 예측하려는 것이었다.
방식은 다르지만, 마음은 같다.
우리는 늘 두렵고, 그래서 예측한다.
그 두려움의 이름이 과학일 수도 있고, 점술일 수도 있다.
그러니 고대와 중세의 예측을 ‘미개하다’고 단정 짓기 전에,
그들이 살아남기 위해 얼마나 절실했는지를 먼저 떠올려야 한다.
나는 과학을 믿는다.
하지만 가끔은, 정말 더 나아진 걸까,
더 행복해진 걸까, 스스로에게 묻는다.
과학은 세상을 신의 손에서 빼앗아왔다.
예전엔 신의 뜻이라 믿었던 일들이 이제는 자연법칙으로 설명된다.
신의 뜻이 사라진 자리에 인간의 계산과 분석이 들어섰다.
운명은 더 이상 고정된 것이 아니고, 미래는 우리의 선택에 달렸다고 믿는다.
하지만 동시에, 그 미래는 더 복잡해졌고, 더 예측 불가능해졌다.
현대 과학은 오랜 시간 동안 미래의 불확실성을 다루어 왔다.
기후 변화, 경제 흐름, 질병의 확산까지
수많은 이론과 모델이 세워졌고,
경이로운 수준의 단기 예측이 가능해졌다.
하지만, 현대 과학의 가장 중요한 교훈 중 하나는 이거다.
“아무리 강력한 이론이나 정밀한 모델이라 해도,
미래를 완벽히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는 장기적인 예측에 실패하며, 그 실패를 반복해서 배우고 있다.
지구 반대편의 재난이
오늘 내 일상에 영향을 주고,
세계는 너무 연결되어,
우리는 점점 더 적은 것을 통제하게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신의 시대보다 더 많은 정보를 가진 지금이 오히려 더 불안하게 느껴진다.
고대인들은 신의 뜻을 받아들이며 살았다.
우리는 알고리즘의 예측을 믿으며 산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여전히,
예측할 수 없는 세상 속에 살고 있다.
그리고 나는,
그 모든 기술과 분석 속에서도 때때로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과학을 믿는다.
그렇지만 더 행복해졌는지는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