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익으로 물러선 고공단보

일잘러의 힘, 정치력 - 이익으로 물러서기 - 고공단보

by 오치규

명분이나 의리를 앞세워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요구를 하는 것은 억압적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일이 ‘이익' 때문이라 간주하면 훨씬 더 현실적이며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사기>는 의리나 명분보다 이익을 앞세우는 현실주의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주왕조의 시조인 고공단보古公亶父가 “덕을 쌓고 의를 행하자 나라의 백성들이 모두 그를 받들었다.”고 <사기>는 적고 있지만 그 “덕과 의"라는 것이 바로 ‘이익'이라는 점을 명백히 하고 있습니다.


융적戎狄이 공격을 해 왔을 때 고공단보는 재물을 내어줬고 또 다시 공격해 왔을 때 백성들은 싸울 것을 요구했지만 피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인민이 군주를 세우는 것은 자신들을 이롭게 하기 위한 것이오. 지금 융적이 우리를 공격하는 까닭은 우리의 땅과 인민 때문이오. 인민이 내게 있든 저들에게 있든 무슨 차이가 있겠소? 인민들이 나를 위해서 싸우고자 한다면 이는 그들의 아버지나 아들을 죽여가면서 그들의 군주가 되는 것이니, 나는 차마 그렇게는 하지 못하겠소.”(사기, 주본기)


고공단보는 백성들을 희생시키지 않고 그들의 이익을 보장하기 위해 싸움을 피해 저수를 떠났고 양산을 넘어 기산 아래에 정착하는 선택을 하게 됩니다.


지배자는 늘 어떤 이데올로기를 앞세워 자신의 지배를 정당화하고 백성들에게 복종을 요구하며 자신을 위해 싸우고 죽을 것을 강요합니다. 하지만 고공단보는 백성들이 자신들 스스로의 이익을 위해 군주를 세우는 것이며 결국 백성들은 어떤 사람이든 자신들을 이롭게 하는 군주를 선택할 것이라 명백히 지적하고 있습니다. ‘인민주권론'의 선구적인 대목이라 할 수 있습니다.


동물이든 인간이든 모든 행동의 가장 기본적인 동기는 ‘이익'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사람들을 비난할 필요도 없고 배신당했다며 억울해 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들에게 이익을 주지 못한 자신을 돌아보고 그들이 필요로 하는 더 큰 이익을 그들에게 줄 수 있는지 방법을 찾으면 됩니다. 더 이상 줄 수 있는 이익이 없다면 그 일에서 물러서면 되고 이익을 줄 수 있는 다른 일이나 사람들, 직장을 찾아 나서면 됩니다. 곤경에 빠져 있거나 외로운 처지에 있을 때 ‘이익'이라는 측면에서 자신과 주변을 한번 돌아보면 큰 실마리를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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