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산그늘의 변화
다큐멘터리의 세계적인 성공으로 인해 그 배경이 된 산그늘 마을에는 마을이 생긴 이래 가장 많은 관광객이 몰리기 시작했고, 작은 산골 마을은 현 시점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이목이 집중되는 관광지로 거듭났다.
마을 입구에는 관광객을 맞이하는 거대한 호랑이 석상이 세워져 있었다.
손때가 묻은 채 희미해진 황금색 눈, 목에는 “산신의 마을 산그늘”이라는 현수막이 둘러져 있었고, 그 슬로건은 마을 전신주마다 펄럭이고 있었다.
옛 국도는 깔끔한 아스팔트 도로로 정비되었고, 그 초입에는 연중무휴로 운영되는 ‘생태문화촌’이 자리잡고 있었다.
주말이면 관광버스 여러 대가 동시에 들어왔고, 아이들은 손에 호랑이 발자국 모양의 풍선을 쥐고 뛰어다녔다.
마을 곳곳에는 식당과 카페, 펜션이 빼곡히 들어섰고, 골목마다 통나무 데크와 전망대, 해설판이 규칙적으로 배치되어 있었다.
어딘가… 깨끗했지만, 이상하게 낯설었다.
마을에 찾아오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호랑이를 직접 보고 싶어했으나 호랑이는 야생 그 자체인 맹수였고, 수많은 관광객을 제멋대로 산에 들여보내기엔 위험해 보였다.정부에서는 군 병력을 동원하여 임시로 대부분 산 지역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었다.
어느 날 오전 윤성은 자신의 사무실로 환경부 인사와 이장을 불러 어떻게 조치하면 좋을지 이야기하고자 했다.
“ 언제까지나 군 병력의 도움을 받는 건 보기에도 좋지 않고, 이대로 계속 군 인원을 투입할 순 없겠죠,정부에서도 뭔가 조치가 필요하다 생각하던 참입니다.”
“마을에 이렇게 많은 관광객이 몰린 건 처음인 만큼 마을사람들은 매우 만족하고 있습니다. ”
“그렇다면 관광객들의 안전을 유지하며 자연을 해치지 않는 방안을 강구해야겠네요.”윤성이 무언가 결심한 듯 말했고, 그 말을 들은 환경부 인사는 웃으며 대답했다.
““좋습니다. 동물보호연대 측에서 방안이 있으시다면 말씀해 주세요. 비용은 최대한 지원하겠습니다”
“대단한 방법은 아니고 그냥 창살을 설치하자는 거에요.”
“동물원을 만들잔 겁니까?”윤성의 말을 들은 환경부 요원이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아뇨 그 반대입니다.관광객들이 보고 싶어하는 지역에 길을 만들고 그 길에 철창으로 벽과 천장을 만드는 겁니다. 자연을 가두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가두는 거죠,틈틈히 안전요원을 배치해 혹시 모를 사고에 대비하고요.”
“좋은 생각이구만. 마을 둘레엔 전기 울타리만 쳐도 안전은 확보될 것 같네.”
“이장님께서도 찬성하신다면 그렇게 진행하도록 하죠.”
반년 뒤 어느 날 정 노인의 집 부근 산기슭으로부터 공사가 시작되어 길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 길은 호랑이굴 앞을 지나 제물을 던졌던 절벽 꼭대기를 거쳐 다시 내려오는 경로였고, 호랑이굴이 내려다보이는 절벽에는 바닥이 강화유리로 된 전망대가 위치했다.몇주 뒤 공사가 마무리되고, 일반 관광객들에게 개방되자 수많은 관광객이 호랑이를 보기 위해 몰렸다.수많은 아이들이 호랑이굴 부근에서 “호랑이야 나와봐!”,“호랑이야 안녕!” 등 호랑이를 보기 위해 열심히 소리쳤다. 그럼에도 굴은 침묵했다.
그 안에서는 이전과 같은 울음소리도, 움직임도, 생명의 기척도 들리지 않았다.
호랑이는 그 곳에서 더 이상 태어나지 않았다.
5장. 호랑이순례길
쇠창살로 둘러쌓인 독특한 길이 생긴지 한달여간 관광객들은 끊임없이 찾아왔다. 늦가을이라는 계절적 특성 으로 인해 단풍구경을 하려는 사람들까지 몰리며 알록달록한 나무만큼이나 길 역시 알록달록하게 물들었다. 그 길의 공식적인 이름은 그늘산둘레길이었지만 사람들은 모두 호랑이순례길이라 부르며 마치 성지순례를 하듯 찾아왔다. 그러나 조금 더 시간이 지나자 관광객들 사이에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호랑이도 없는데 사람 끌려고 관광지 만든 거같아’,‘난 벌써 몇 번째 왔는데 호랑이 그림자도 못봤어.’. 사람들이 호랑이가 보이지 않는다며 불평하기 시작할 무렵 윤성도 이상함을 느끼고 다시 산에 오를 계획을 짜고 있었다.
윤성은 몇 주째 뒤척이고 있었다.
사람들은 여전히 찾아오고 있었고, 호랑이는 여전히 나타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