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사슴

꽃사슴

by Everett Glenn Shin

어린 시절 우리 가족은 주말이면 교외의 온천에 다녀오곤 했다.
그 온천 중 한곳에는 조그만한 사슴 우리가 있었다.
목욕보다는 동물 구경이 더 좋았던 나는, 따뜻한 물 속에 있기보다도 우리 안 사슴들의 움직임을 더 오래 바라보곤 했다. 그때의 기억은 지금도 꽤나 선명하다.

사슴의 뿔을 한 마디씩 그리다 보니, 그때 신기한 마음으로 들여다보던 사슴들이 문득 떠오른다.
물론 그 이후로도 동물원 등 여러 곳에서 사슴을 보았지만, 그때만큼 사슴의 몸을 마디마디 순수하게 바라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아마 그때의 나는, 사슴을 본 게 아니라 ‘처음 보는 세계’를 보고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지금 색연필로 다시 그 뿔을 따라가며 그리면, 그 어린 아이가 잠시 내 뒤에서 고개를 내미는 기분이 든다.
그리고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그 시절의 눈으로 다시 무언가를 바라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지금의 나에게는,

그림을 그리는 시간이 충분히 특별해진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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