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향수
매해 크리스마스가 되면 가족은 마니또 행사를 한다.
누가 누구의 마니또인지 숨긴 채 선물을 준비해 오던 방식 대신,
올해는 카톡 사다리 타서 자신의 모습을 공개한 오픈 마니또를 했다.
식사 후 케이크를 나누며
준비한 선물들을 간단히 교환했다.
누군가는 맛있는 차를, 누군가는 옷을, 누군가는 운동화를
또 누군가는 다이어리와 텀블러를 건넸다.
모두가 웃었고, 행복한 순간들이었다.
삶의 무기력과 지침 속에 활력을 준 나의 마니또인 둘째 딸에게서 향수를 받고 선물은 이런 감동을 주는구나 처음으로 생각해 본 크리스마스였다.
우리 집에는 TV가 없다.
소파 대신 큰 식탁이 거실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고,
편안히 기대어 쉬기보다는
늘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은 구조다.
단독주택이라
겨울은 춥고 여름은 덥다.
각자의 방에서 하루를 버티는 것이 최상의 휴식이 되었고 이젠 그것이 익숙해져 있다.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아무 목적 없이 이야기를 나누는 일은
아주 오랜 전의 일처럼 가물가물하다.
집안의 구조가 불편하다는 걸 알면서도
현실적인 문제와 재정적인 사정 앞에서
쉽게 바꿀 수 없었다.
그렇기에
언젠가는 따뜻하고 여유로운 공간에서
살고 싶다는 소망이 늘 내 마음속에 남아 있다.
딱딱하게 느껴지는 7인용 식탁에서 마니또 행사를 진행했다. 나의 마니또인
둘째 딸이 건넨 향수를 뿌리는 순간, 집안의
공기가 확 달라졌다.
따뜻함이 머무는 집의 냄새였고,
달콤한 커피라테를 들고 대화를 계속 이어지게 하고 싶은 마음이 스며드는 장소로 변신했다. 순간이동한 느낌이다.
그 향수는 나를
아직 오지 않은 삶으로 초대받은 느낌이다. 마치 마법사의 초대장을 들고 이동한 신데렐라처럼
“지금, 여기가 바로 그곳이다”라고
착각하게 만들 만큼 충분했다.
그 향수는
새로운 꿈을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이미 마음속에 있던 소망에
불을 붙이는 촉매 같았다.
이 선물을 준비한 딸은 엄마의 느낌과 같은 향수를 찾아서 이곳저곳 다녔다고 한다.
내 마음을 알고 있었던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선물을 받은 식구들은 자신의 필요를 알고 생각하고 있었다는 느낌 때문에 더 감동이다.
말로 하지 않아도,
힘들다고 꺼내지 않아도,
각자 마니또 마음속에 담긴 것들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한 탁월한 선택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알아보는 관계,
그 이름이 가족이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만드는 크리스마스 저녁이다.
현실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고
집도, 삶의 사정도
아무것도 달라지지는 않았지만
그날 이후로 나의 소망은
향수 덕분에 조금 더 분명해졌다.
언제쯤이면 따뜻한 공간과 소파에서 여유롭게 삶을 나눌 수 있을까라는 생각 대신에 딸이 준 그 향수 때문에 마음속에 따뜻한 공간이 이미 완성된 채로 2026년을 맞이한다.
하늘의 카이로스를 경험하고자 오늘의 크로노스 시간을 미리 감사로 채워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