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보다 사람

10년 등산 전문가 언니와 함께

by 한정희

주말 아침, 남편과 함께 뒷동산에 올랐다.
500ml 생수 한 병, 핸드폰 하나,
가볍게 챙기고 나선 길이었다.


그 전날까지 손님을 맞이하고,
셀모임으로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다 보니
몸은 꽤나 무거웠다.


그래서 오늘 산행은 몸을 푸는 정도면 좋겠다 싶었다.

하지만 남편은 달랐다.
“운동은 빠르게 걸어야 효과가 있지.”
맞는 말이다. 늘 옳은 말만 한다.

하지만 나는 그 말에 따를 수 없었다.
이미 피곤한 몸을 더 밀어붙이기엔,
지금의 나는 그럴 상태가 아니었다.

그래서 조심스레 말했다.
“당신 먼저 올라가요. 난 천천히 갈게요.”


혼자 걷는 걸 좋아하지 않는 남편은
조금 서운한 얼굴로 앞서 걸었다.
나는 산 입구에서 몇 걸음 더 가다가,
결국 조용히 되돌아 나왔다.


매일 아침, 나는 산에 간다.
7시 반이면 등산언니를 만나
구름산 정상을 향해 오른다.

그 길은 한 시간 반.
빠른 걸음으로 쭉 올라가면
적당히 땀도 나고, 기분도 상쾌하다.

신기하게도,
그 길은 한 번도 힘들다고 느낀 적이 없다.


그런데 왜, 오늘 남편과의 산행은
몇 분 만에 발걸음이 무겁고,
심지어 돌아서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까.

등산언니는
10년 넘게 산을 오른 사람이다.
걸음은 빠르지만, 억지스럽지 않다.
오르막길이 시작되면 숨을 가다듬고,
말을 멈추고, 자연스럽게 호흡을 맞춘다.

때로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걷는다.
중요한 건 ‘정상에 도착하는 시간’이 아니라
함께 걷는 리듬이다.

그래서일까.
등산언니와 함께 걷는 산은
늘 가볍고, 즐겁다.

나는 오늘 알게 됐다.
산이 힘들었던 게 아니라,
걸음의 속도와 마음의 온도가 달랐던 것이라는 걸.

누구와, 어떤 리듬으로 걷느냐에 따라
같은 산도 전혀 다르게 느껴질 수 있다는 걸.


그리고
나는 누군가와 걸을 때,
말없이도 내 속도를 알아봐 주고
자연스럽게 맞춰주는 사람이 좋다는 걸.

산을 오르는 일은 어쩌면,
관계를 맺는 일과도 닮았다.

누군가의 걸음이 너무 빠를 때
나는 조용히 뒤에 머물고 싶어진다.
하지만
같은 길을 걷더라도
서로의 숨을 헤아려주는 사람과 함께라면
그 길은 놀랍도록 가볍다.

오늘은 비록 정상을 밟지 못했지만,
대신 내 마음의 속도를 돌아보는
소중한 하루였다.

구름산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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