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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운 Mar 28. 2022

천상의 맛, 그릭요거트

오미크론과 일주일간의 회복 그리고 그릭요거트



결국 우리 가족은 모두 코로나에 걸렸다. 아빠가 고등학교에 기간제 교사로 다녀오고 난 후 저녁 기침이 심상치 않았지만 환절기 비염이라 생각했다. ‘혹시’ 하는 생각에 아빠는 안방에 격리되고 마스크를 끼고 지냈다. 하지만 오미크론은 독감이나 감기와는 확실히 다른 전염성이 있었다. 우리는 화장실로 묶인 운명 공동체였고 온 가족이 코로나에 확진되었다.


“엄마 목 안 아파요?”


엄마는 코로나에 걸려서도 전화기를 내려놓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전화기가 더 불이 나는 것 같았다. 동생과 나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눈이 마주쳤다. 코로나에 걸린 아빠를 피해 우리 방으로 피신 온 엄마는 온가족이 코로나에 확진되어서도 우리를 돌본다며 좁은 방에 우리 자매와 쭉 함께지냈다. 엄마가 목이 아플 것도 걱정이었지만, 사실 한 편으로는 앓아누운 와중에 같은 이야기만 열 번 넘게 들어 피곤했다.


“아, 총무 언니한테는 코로나 걸렸다고 이야기 안 했나? 온 가족 다 확진됐어. 글쎄, 우리 딸 체온이 40도가 넘었는데도 열이 안 내려가서 응급실에 갔지 뭐야.”


우리 가족이 코로나에 걸렸다는 소식이 엄마의 코가 맹맹한 목소리를 타고 핸드폰 너머로 멀리멀리 퍼졌다. 엄마의 친구, 풍물 동아리 회원들, 같이 일하는 직원들, 친인척 등등 통화의 대상은 끊이지 않았다. 엄마는 침대에 누워있는 동안 핸드폰은 전자파가 위험하다며 스피커폰으로 멀찍이 들고 전화를 했다. 전자파가 위험하면 전화를 줄이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대화할 기력조차 없던 나는 거의 모든 통화를 함께했다. 그리고 전화의 결과로 일주일 동안 우리 집 문고리에는 꽈베기 두 박스, 천혜향이 가득 담긴 종이 가방, 소고기죽, 약봉지가 걸렸다.


우리 가족은 같은 병원체에 감염되었지만 증상이 다양했다. 그래서 탁자에 약국 진열장과 비슷한 수준으로 다양한 약들이 가득 찼다. 동생은 인후통, 엄마는 콧물, 근육통 아빠는 기침이 주된 증상이었고 나는 발열, 두통, 몸살 위주로 아팠지만 제일 심하게 앓아 모든 증상을 다 겪었다. 병원에서 처방해준 약은 효과가 없었다. 약국에서 산 약들이 확실히 차도가 있었는데 약이 많아지자 엄마가 약을 종류별로 분류하며 끼니마다 챙겼다. 돌아가며 모든 증상을 다 겪은 나는 때마다 다른 약을 먹었다. 약의 제조는 엄마가 맡았는데, 엄마를 약사님이라고 부르며 너스레를 떨었다. 물론 약을 섞어 먹을 땐 약국이나 병원에 전화해서 같이 먹어도 되냐고 진짜 약사님께 물어보았다.


병가를 일주일 썼는데 하루도 남기지 않고 일주일을 꽉 채워서 아팠다. 너무 아파서 4일 동안 반찬도 없이 그냥 새허연 죽만 먹었다. 코로나에 걸리기 전에는 자가격리로 일주일을 쉬면 피자랑 치킨을 마음껏 먹어야지 생각했는데 웬걸, 불가능한 일이었다. 물보다도 맛이 없는 죽 한 그릇을 목으로 넘기겠다는 일념 하나로 살아가는 하루하루였다. 목이 아프기에 죽과 생강차, 약 그리고 생수를 들이키는 일로도 버거운 일상이 억울했다.


나아갈 즈음에는 배달 어플을 뒤적거리다가 치킨과 피자를 포기하고 그릭 요거트를 배달시켜 먹었다. 과거 먹은 그릭 요거트는 지점토 같은 식감으로 입 천장에 철썩 달라 붙어서 혀로 뭉개며 먹었던 고통스러운 기억이 있는 음식이었다. 달달한 꿀스틱을 요거트 통에 영혼까지 털어 겨우 입속에 수분을 충전해가며 디저트 시간을 마무리했었다. 그 후로 다신 먹지 않겠다던 그릭 요거트를 다시 먹게 된 것은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기 때문이고 건강을 향한 의지였다. 그런데 그 망각은 예상치 못한 선물이었다.


 행복한 순간을 떠올려 보자면, 숟가락에 절반 보다 조금  되게 하얀 요거트를 덜어 낸다. 견과류 초콜릿 한덩어리와 딸기 조각 그리고 블루베리를 함께 담아주면 숟가락이 먹기 좋게 가득 찬다. 새콤한 공기와 함께 슴슴하고 달콤한 숟가락 한입을 들이키고 입술로 쫀쫀한 요거트까지 마저 쓸어 마무리하면, 입안 가득 퍼지는 과일의 향긋함과 새콤함에 기분이 좋다. 그리고 왠지 모를 건강한 기분은 덤이. 뿌듯함에 같이 딸려온 그래놀라는 씹을수록 고소한 들판의 황금빛 맛으로 매혹의 춤을 추며 다음 숟가락을 재촉한다.


그렇게 그릭 요거트를 이틀 연속 사 먹었다. 인후통이 사라짐을 만끽하며 이불 속에 쭈그려 그릭 요거트를 음미했다. 동생에게 나중에 착한 일을 많이 해서 천국에 가게 된다면 천국에 있는 카페에서 이 요거트만 시켜 먹을 거라고 했다. 천상의 맛쯤 되지 않을까 극찬의 노래를 부르며 먹었더니 요거트가 마지막까지 힘을 내서 더욱 맛있어지는 기분이었다.


코로나에 걸리고 누군가는 미각과 후각을 잃어 실제로 답답하고 두려운 일상을 겪고 있다는 걱정스러운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나는 미각과 후각이 더욱 살아났다. 먼저 코로나에 걸렸다 완치한 할머니가 삼촌 편에 보내주신 흑돼지 앞 다리살은 내 생에 먹은 어떤 고기구이보다 기름지고 맛났다.


받은 고기를 후라이팬에 올려 특별한 레시피 없이 구웠다. 노릇하게 구워진 고기 한 덩이를 양념 간장에 콕 찍어 따뜻한 온기가 없어질 새라 얼른 입안으로 집어넣었다. 씹을 수록 감도는 쫄깃한 육고기의 담백함에 언제 목이 메말랐었냐는 듯 침이 한가득 고였다. 영혼의 단짝인 나물 된장국과 함께 먹더니 김이 폴폴 나는 밥 두 공기가 뚝딱이었다.


음식의 맛이 선명하게 느껴지는 것을 보니 그동안 하얀 죽만 먹어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동안 짜고 달고 매운 음식들을 먹지 않고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미각이 살아난 것이다. 아파서 쉬며 그동안 '열일' 하였을 혀에게도 의도치 않은 쉼을 주었다. 그리고 그릭요거트의 진정한 맛을 알아버렸다.


쉴 때는 최대한 밋밋하게 쉬어야 하는 것이었다. 오미크론은 내게 가장 밋밋한 일주일을 선물했다. 아파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심지어 모니터나 스마트폰을 보면 두통에 구역질이 나서 멍을 때리며 시간을 보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음이 재생산의 원동력이 된다는 것을 이번 아픔을 통해 톡톡히 알게 되었다. 쉬는 시간이 주어지면, 일하는 동안 못한 것을 해야한다고 생각하여 최대한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고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먹는 시간으로 보냈다. 하지만 재충전을 위한 진정한 쉼은 '아무것도 하지 않음'이었다.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듯 새롭고 하이얀 마음으로 일터에 나왔다. 출근길 핀 목련은 봄을 알리는 조용한 축제 같았다. 도착한 책상 위 아이들이 접은 종이 개구리가 눈에 보였는데, 손톱으로 누르자 툭 튀어 올랐다. 추운 안개를 뚫고 시작된 오늘 하루처럼 활기차다는 생각이 들었다. 목은 여전히 쉬어 있지만 평소보다 더 힘차게 많이 웃으며 아이들을 맞이했다. 아이들이 보고 싶었다며 배에 그대로 얼굴 박치기를 했다. 헙 소리를 내며 반가움을 온몸으로 느낀 오늘 아침의 인사는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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