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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이 Sep 10. 2018

177 『즐거운 일기』 - 최승자

문학과 지성 시인선


⭐⭐⭐⭐⚡
'이 책을 먹으라'라는 성경구절이 문득 떠올랐다. 예레미야, 에스겔, 사도 요한의 책에 기록된 구절이다.

읽는다는 것은 대체로 책을 먹는다는 이 추상적인 명령을 의미하는 것이지만 최승자의 시집은 내가 읽어서 먹는 것이 아닌 내가 먹히는, 최승자의 시집이 나를 먹어버리는 경험이다.

p11
나는 흘러가지 않았다.
열망과 허망을 버무려
나는 하루를 생산했고
일년을 생산했고
죽음의 월부금을 꼬박꼬박 지불했다.

ㅡ '끊임없이 나를 찾는 전화 벨이 울리고' 중에서

이 시집이 제목처럼 즐겁지 않은, 마치 즐거움의 여집합인마냥 경계의 바깥인것처럼, 내가 읽는 것이 아닌 책이 나를 읽고 쓴 것처럼. 

자신이 거주하는 외딴 세계와 괴로움을 정면으로 들이 받으며 정직하게 고통스러워한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문학평론가 #황현산 선생께서 문학과지성사의 단 한권의 책으로 이 시집을 꼽았더랬다. 그리고 이름만으로 먹먹한 최승자.

소설보다 수필보다 투명하게 쏟아낸다. 

즐겁고 즐거워 즐거운데 즐거운 즐거움의 의미는 게슈탈트 붕괴에 직면하고 새로운 즐거움에 파묻히고, 그래서 일기에 적힐수 밖에 없는 만연한 고통의 역설이다. 

고통의 바다, 그 범람에서 우뚝솟은 즐거움의 외로움이 차갑게 번뜩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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