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어디에...
주기철 목사님은 고등학교 시절 교회에 비치되어 있던 신앙전기 만화를 통해 알게 됐다.
손양원 목사님도 그 만화 전기를 통해 알게 되었다.
신사참배 거부로 익히 아는 잔인한 고문, 손톱과 부드러운 살에 가하는 것과
못이 박힌 땅을 걷기도 했다
주 목사님은 첫 부인을 잃고 재혼했는데
고문 당시엔 재혼한 사모님이 가정을 지키고 있었다
유혹에 흔들리는 목사님에게 사모님은 '끝까지 승리하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그리스도에의 신앙은 목숨보다 귀중한 것임을 스스로 보인 분이었다
그리고 광복을 얼마 남기지 않고 잠시 집을 찾았을 때 고문 후유증으로 소천하셨다
(가족을 만나 약해진 마음에 신사참배를 하도록 회유하는 방법이다)
지금 생각해도 가슴 뭉클한 이야기지만...
성탄절의 주인공인 예수님이 아닌 다른 인물이...
그 사람이 아무리 위대하고 유명하고 숭고한 인물일지라도
에수님의 자리를 차지하는것은 생각해봐야 할 일이다
요즘 미국에선 메리 크리스마스 대신 '해피 할리데이'라고 한단다
종교색이 짙은 기독교 명절인데 기독교식 인사가 차별의 뉘앙스라나
이 정도면 아예 크리스마스라는 이름을 바꿔도 무방한 가치관이다
그 날의 가장 중요한 가치를 던져버리고 그 날의 단물만 쪽 빨아먹고 있는 것이다
주기철 목사님 살아 계셨더라면
성탄절에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 자신의 이름이 더 회자 되는 것을 기뻐하셨을까
너무 예민한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이런 일은 크고 작게 여기저기서 일어난다
나는 가지 못했지만
크리스마스 이브 날 교회에서 각 부서별 학생들이 발표회를 했다
중학생 팀에 한 여학생은 엄마의 등쌀에 주일 토익을 보느라 토-일 연습에 빠지게 됐다
주일 시험이 끝나자마자 교회에 왔는데 발표회를 준비하는 아이들이 '너는 뺐다'라고 단칼에 선을 그었고 그 아이는 어쩔줄 몰라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성탄절의 의미, 예수님의 목적을 잃어버린 아이들의 발표회 준비는 단지 자신들의 만족에 그치고 말았다
안타깝게도 연습을 도와주던 교사 하나가 아이들 속에서 '그 아이' 대신 '그 아이들'의 편을 들고 있었다
교사도 아이들도 자신들의 목적이 중요하지 성탄절 발표회를 준비하는 더 큰 목적을 생각하지 못하고 말았다
그 아이는 올해 가장 많은 친구들을 교회에 데리고 왔었다
달란트 비유라면 그 아이는 5달란트 종이었고
그 아이에게 선을 그은 그 아이들은 1달란트 종이었다
교회 어떤 분이 문자를 보내주었다
오늘 주기철 목사님의 다큐를 꼭 보라고
'예수 그리스도'라는 말을 '종교'의 이유로 내뱉지 못하는 세상에서
'주기철'이라는 이름이 그나마의 차선일지 모르지만
성탄절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방송 하나 없이 '주기철 목사님'에만 열광하는 것은 고민해봐야 할 일이 아닐까
나는 주기철 목사님을 존경하고 그분의 삶을 듣고 보노라면 가슴 뭉클하고 벅차지만
하나님에의 다리는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다
그리고 그 이름 밖에 없다.
주기철 목사님도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나는 매일 죽는다'라는 사도 바울의 말씀을 알기에
많은 목회자들이 두려움에 신앙을 버릴 때 목숨을 걸고 신사참배를 거절하고 비판했다
누가 됐든 오늘은 예수님의 날이다.
ps. 재미있는 건 당시 신사참배를 거절한 많은 목회자들은 순교하거나 후유증으로 노후롤 편치 못하게 보냈다. 많은 수를 이루는 현재 기독교의 학파, 계파, 누구누구의 제자들에서 '누구누구'의 대부분은 모두 신사참배를 했다. 우리가 대체로 아는 일제시대 대표적 목회자가 '손양원, 주기철' 두분 뿐인 것도 많은 목회자가 신앙을 버리고 신사참배를 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물론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순교한 목회자들, 성도들도 많다. 당시 신사참배한 목회자들은 '신사참배는 괜찮다'라는 문서에 서명하기까지 했다. 그들이 다수이며 다수에 의해 여기까지 온 것도 알아야 한다. 힘들 때는 변절하고 편해질 때가 되서야 회개한 믿음을 가진 자들이 우두머리 질을 한 것이 한국 기독교의 역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