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 오 나의 계절이여~
추우면 힘들긴 하지만 춥지 않으면 만들 수 없는 것도 있어, 추위도 소중한 조미료 중의 하나다.
_이가라시 다이스케 원작, 모리 준이치 감독 영화 <리틀 포레스트> 中
온기 따뜻한 집안에 있다보면 분명 겨울인데 시원한 물이 당긴다. 급한대로 싱크대 선반에서 컵을 꺼내 수도꼭지의 방향을 냉수쪽으로 완전히 틀면 얼음장 같은 수돗물이 컵안으로 쏟아진다. 여름에는 받을 수 없는 완전한 냉수. 오직 겨울에만 완전한 온수와 냉수가 툭하면 짠하고 쏟아진다.
졸린 눈을 비비며 현관을 열면 쨍한 냉기가 코끝을 시작으로 얼굴을 덮는다. 늦은 밤까지 잠을 설쳐 부어오른 몸과 마음을 한번에 깨워주는데 '총총총' 잰 걸음으로 지하철 입구까지 서두르다 보면 그제서야 코끝에서 시작한 하루가 발끝에 도착한다.
직접 만든 순대를 파는 할머니가 순대가 든 대야의 천보를 들어올리면 하얀 김이 구수한 냄새를 풍기며 올라온다. 종종 혼자 찾는 가락국수 집의 그릇에서도 하얀 김이 올라온다. 그리고 만두. 눈으로 먹고 냄새로 먹는다는 이 표현도 겨울이 되어서야 제값을 받는다.
가히 폭발하는 매력을 뿜어내는 겨울 간식을 충동적으로 사와 남긴다 해도 괜찮다. 냉장고가 꽉 차서 베란다 언저리에 둬도 이삼일은 거뜬할테니까.
그리고 폭신하고 부드럽게 감싸안는 이불. 그 이불을 가슴까지 덮고 여분의 베개를 그 위에 얹어 책장을 넘기며 만족을 느낀다. 이불 속 바람을 몰아내고 발끝까지 따뜻해지면 곁에 둔 얇은 이불을 얼굴 위로 끌어안고 몸을 움츠린다. 이제는 끝자락이 보이는 겨울이 아쉽기만 하다.
p.s.
나의 계절이 이렇게 또 가는구나.
험난한 여름같은 봄, 여름같은 여름, 여름같은 가을을 어떻게 견딜지 생각만해도 어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