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antz Schubert(1797~1828)
슈베르트(Frantz Schubert, 1797~1828) 불행했다. 그가 불행했다는 사실은 단정지을 수 있다. 18세에 괴테의 시를 가사로 하여 작곡한 명곡 <마왕>은 괴테의 눈에 들지 못했고, 존경해 마지 않았던 베토벤과는 베토벤이 중병에 들고나서야 만나는 바람에 슈베르트에게 오히려 상처가 되고 말았다. 전업 음악가의 삶을 살았지만 성악가 '포글'과의 연주여행 외에는 그다지 인정받지 못했고 음악은 잘 팔리지 않아 무명의 음악가와 곡을 매매했다. 28일간 물만 마시며 굶었으니 돈을 융통해달라는 편지를 그의 형제에게 보낸 일도 기록되어 있다.
키는 152cm, 등은 굽었고, 눈은 심한 근시였다. 여자 부모의 반대, 신분차이 등으로 사랑은 매번 실패.
그리고 매독으로 31살에 세상을 떠났다.
슈만은 슈베르트 사후 7년째 되는 해인 1835년에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은 슈베르트의 이름조차 알지 못했다. 위대한 천재성의 디테일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수많은 기사가 쓰여져야 할 것이다. 아마도 언젠가는 그런 일이 이루질 것으로 믿는다.” 라고 말했다.
브람스는 슈베르트 교향곡 8번 '미완성'을 듣고
“이 곡은 어느 것 할 것 없이 내용이 충실하고 그 아름다운 선율은 모든 사람들의 영혼을 감동시키는 온화하고 친밀한 사랑의 속삭임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이렇게 대중적인 교향곡을 아직까지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다”라며 극찬했다.
슈베르트는 괴테의 시44편을 곡으로 옮길만큼 그의 팬이었으나 생전엔 괴테의 인정을 받지 못했다. 슈베르트가 죽은 지 2년만인 1830년에 자신의 집에서 <마왕>을 들은 괴테는 그제서야 탄식했을 뿐이다.
슈베르트는 가진 것 없이 가난에 살다 죽었다.
온갖 교양을 뽐내며 슈베르트의 음악을 연주하는 음악가들을 보면 때때로 불공평함을 느낀다.
화려한 드레스, 턱시도를 입고 엄청난 티켓값을 부르며 그의 음악을 연주한다.
지금 그의 음악을 연주하는 교향악단, 4중주단, 피아니스트, 성악가, 지휘자들이 받는 영예와 존경을 슈베르트가 살았을 적 10분의 1, 100분의 1이라도 받았다면
작곡가든 화가든 그들을 아래와 같은 공식으로 수치화 했을 때
사후대우 / 생전대우 = *
슈베르트 만큼 높은 값을 얻는 이도 없지 않을까.
끝없이 연주로 재생산되는 만큼 슈베르트는 고흐보다 높을 것이다.
이 밤에 내가 생각해도 유치하고 터무니없는 그의 삶에 대한 아쉬움이지만 안타깝다.
요즘 책을 읽을 때 켐프가 연주한 슈베르트의 피아노 소나타를 듣는다. 선율은 부드럽게 이어지면서도 자장가만큼 늘어지지 않는 리듬을 탄다. 순간순간 책도 음악도 아닌 슈베르트의 삶이 짊어진 운명같은 가난이 떠오른다.
언제나 떠나고 나서야 신화를 써내려간다.
p.s. 아래는 소프라노 조수미씨가 프랑스 파리 공연에서 부른 슈베르트의 Ave Maria. 조수미씨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소식을 이틀 전 공연 중 전해 들었다. 그녀의 아버지에게 바치는 곡.
"My dad left me for good a couple of days ago and his funeral was held this morning in Korea. But I am here in Paris to sing in front of you. I am not sure if this is appropriate. But as a singer I thought I should be here. Also I firmly believe my dad is happy to be watching me and you the audience from up above at this moment. Thank you for being with me today. I won't forget this. I dedicate this recital to my dad. Now, I will sing Schubert's Ave Maria for my d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