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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이 Mar 02. 2016

『침묵』_엔도 슈사쿠

165, 16-23 유일하게 기대되는 영화의 원작.


일본이 낳은 세게적인 기독교 작가 엔도 슈사쿠, Endo Shusaku



엔도 슈사쿠(1923~1996)의 <침묵>을 처음 알게 된건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영화화하겠다는 기사를 접하고나서다. (리암 니슨, 앤드류 가필드, 와타나베 켄 등 출연) 2015년 11월 개봉예정이었는데 한참이나 미뤄지고 있다. 촬영은 일본이 아닌 대만에서 진행되고 있다.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의 영화화로 논란의 대상이 되었던 그가 '신앙의 본질'로 이 작품을 그릴지, '회의'로서 그릴지 자못 궁금해진다.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은 <그리스인 조르바>의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소설이다)



*
엔도 슈사쿠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신앙을 기초로 한 깊이 있는 작품 세계를 이루었고 여러차례 노벨 문학상 후보로 오른 세계적인 작가. <침묵>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에 있는 그의 다른 작품인 <깊은 강>도 읽고 싶게 만든 작품이다.

출판사는 가톨릭에서 운영하는 '바오로딸'이라는 곳인데 사실 읽기 전에 조금 꺼려졌다. 예전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를 '신앙고백'으로 완전 수정해 해적판으로 공연한 기독교 연예인들이나, 미우라 아야코의 <빙점>을 신이 선물한 선행의 대가로만 단순 해석하는 개신교계의 무지함 때문이었다. 물론 이 책은 다행히 그렇지 않았지만, 출판사의 종교적 편견을 의심하면서 읽어야 했던 건 안타까운 일이었다. 문학전집 출판사들의 목록에 이 책이 있었더라면.










<줄거리>
17c 일본 선교를 떠난 페레이라 신부가 배교했다는 소식이 포르투갈에 당도한다. 포르투갈에서 페레이라의 교육을 받은 세명의 제자가 소식을 듣고 그를 만나러(+선교) 일본으로 떠난다. 중간 경유지인 마카오에서 열병을 앓은 호안테를 제외한 가르페와 로드리고 신부가 최종적으로 일본 땅을 밟고... 자생적으로 신앙을 잇는 일본인들을 만나 희망을 얻지만 배신과 회개를 끝없이 번복하는 '기치지로'에 의해 결국 영주에 붙잡히고 만다. 끌려가는 로드리고 신부는 감옥에 갇혀 성화를 밟고 배교를 강요당하는 일본인들을 만난다. 일본인들은 계속 죽이면서 자신을 건드리지 않는 배교 전문가 이노우에. 언덕위로 끌려간 로드리고 신부는 헤어졌던 가르페 신부가 결박당한채 끌려가는 모습을 멀리서 발견한다. 배교를 거부하고 바다에 던져진 일본 여성을 구하기 위해 바다로 뛰어든 가르페 신부는 목숨을 잃고... 로드리고 신부는 어둡고 더러운 감옥으로 끌려간다. 벽에서 '주님을 찬미하라'라는 라틴어 문구를 발견하고 마지막까지 신앙의 열정을 가졌던 누군가로 인해 힘을 얻는다. 늦은 시간 코고는 소리가 들리고... 이미 배교하고 일본인 편에서 그들의 일을 하는 페레이라 신부가 찾아와 그 소리는 코 고는 소리가 아니며 '구덩이 속에 달아매는 고문'을 당하는 이들이며 로드리고가 배교하지 않으면 모두 죽을 것이라고 한다. 또한 벽의 글씨는 페레이라 신부가 썼던 것. 이노우에 앞에 선 로드리고 신부. 예수 그리스도의 성화가 발 앞에 놓여있다.

p296
신부는 발을 올렸다. 발에 둔중한 아픔을 느꼈다. 그것은 형식이 아니었다. 자기는 지금 자기 생애 가운데서 가장 아름답다고 여겨온 것. 가장 성스럽다고 여겨온 것. 가장 성스럽다고 여겨온 것. 인간의 가장 높은 이상과 꿈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을 밟는 것이었다. 이 발의 아픔. 이때 밟아도 좋다고 목판 속의 그분은 신부를 향해 말했다. 밟아도 좋다. 는 너희들에게 밟히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나, 너희들의 아픔을 나누어 갖기 위해 십자가를 짊어 졌다. 
이렇게 해서 신부가 성화에다 발을 올려놓았을 때 아침이 왔다. 닭이 먼 곳에서 울었다. 





소설의 제목 <침묵>은 인간, 특히 독실한 신앙을 가졌고 죽음도 무릅쓰는 가련한 인간들(특히 일본 하층민들)의 고통에 아무 응답도 정의도 행하지 않는 신의 '침묵'을 말한다. 그 침묵에 대한 엔도 슈사쿠의 절절한 목소리가 소설에 담겨있다. 


p104
무엇을 더 말하고 싶겠습니까. 저 스스로도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나에게는 모키치나 이치조가 주님의 영광을 위해 신음하고 고통을 겪고 죽은 바다가 오늘도 어둡고 단조로운 소리만 내며 바닷가에 철썩이고 있는 것이 견딜 수가 없습니다. 이 바다의 무서운 침묵 위에 하느님이 사람들의 비통해하는 소리에도 아랑곳없이 그저 침묵만 지키고 계시는 것 같아서….

p171
"당신은 왜 모든 것을 그냥 내버려 두셨습니까?" 하고 신부는 갸냘픈 소리로 말했다. '우리가 당신을 위해 만든 마을까지도 당신은 왜 불타도록 내버려 두셨습니까? 사람들이 내쫓길 때에도 당신은 그들에게 용기를 주시지 않고, 이 어둠처럼 왜 그저 침묵만 지키고 계셨습니까? 왜? 그 왜라는 이유만이라도 가르쳐 주십시오. 우리는 당신이 시련을 위해 나병에 걸리게 한 욥처럼 강한 인간이 못 됩니다. 욥은 성자입니다만 신자들은 가난하고 약한 인간에 불과하지 않습니까? 시련에도 견딜 수 있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 이상의 고통을 더는 내려주지 마십시오.' 신부는 기도를 드렸으나 바다는 여전히 냉랭하고 어둠은 완강하게 침묵만 계속 지키고 있었다. 오직 들려오는 것은 단조롭게 되풀이되는 둔중한 노 젓는 소리뿐이었다.





작가는 그 침묵을 단지 '동행'으로 결정짓지는 않는다. 로드리고 신부는 '밟아도 좋다'는 음성을 듣고 배교의식을 치뤘지만 그것이 자신의 합리화인지 아닌지에 대해서 끝까지 선택하지 못한다(나는 안하는게 아니라 못한다고 읽었다)


p256
"내가 알게 된 것은 이 나라에는 그대나 우리의 종교가 결국 뿌리를 내리지 못하리라는 것뿐이오."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게 아닙니다."
신부는 고개를 흔들며 큰 소리로 외쳤다.
"뿌리를 잘린 것입니다."



페레이라 신부는 일본인 특유의 신앙관을 배교의 이유로 합리화해버리고 만다. 하지만 로드리고 신부는 물론 모든 독자는 이미 '모키치'와 '이치조'의 순교를 발견했다. 가난한 이들은 신앙을 숨기기 위해 절에서 예불을 하기도 했다. 그들이 갖고있는 신앙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는 방증이다. 




로드리고 신부를 끈질기게 쫓아다니며 등장하는 기치지로도 눈길을 끈다. 로드리고 신부가 마카오에 도착하고 일본에 도착한 후에도, 잡혀서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동안에도, 심지어 배교후에도 기치지로는 쫓아와 '고해성사'를 요구한다. 

p136
"저는 약합니다. 저는 모키치나 이치조같이 강한 자가 못 됩니다."

p329
"강한 자도 약한 자도 없다. 강한 자보다 약한 자가 괴로워하지 않았다고 그 누가 단언할 수 있을까."


기치지로의 반복되는 배신과 회심에 화보다는 연민을 느낀다. 기치지로의 양다리가 결국 로드리고를 팔아 넘겼지만, 그의 행동을 [죄] [회개]라는 본질로 생각해보면 나 뿐만 아니라 모든 신앙인들이 매일 겪는 일과 다를 바가 없다. 



침묵... 
앞서 적은 바와 같이 작가는 신의 침묵이 '동행'인지 그저 '침묵'인지 단정짓지 않는다. 누가 읽느냐에 따라 선택적일 수 있다. 로드리고의 배교에 들린 음성이 진짜 '신의 메시지'인지 '그의 합리화'인지에 대한 판단은 독자의 몫임이 분명하다. 성경에 등장하는 순교의 현장에서 발견되는 반짝하는 후광도, 감옥에서의 기적적인 해방도 소설이나 현재에나 존재하지 않는다. 이건 '로드리고 신부'의 고백이기도 하다. 또한 일상 생활에서 늘 발생하는 침묵이다. 나는 요즘 이 '신의 침묵'에 대해서 어찌 할 줄을 모르겠다. 

이 세상에서 신의 존재에 닿는 느낌이 전해지지 않는다면 무엇으로 가늠해야 할까.

야곱도 요셉도 다윗도 그들의 삶의 근거에는 '개인적인 약속'이 있었고 신약의 사건들에는 신앙의 결단을 비추는 후광이 있었는데 지금의 기독교는 약속도 없고 후광도 없는 침묵에 답할 만한 성경의 근거를 대지 못한다. 로드리고 신부의 입을 빌린 엔도 슈사쿠의 말이기도 하다. 

로드리고는 자신의 목소리일지도 모르는 '밟아도 좋다'라는 음성을 들었다. 

그 음성을 '신의 목소리'로도 '로드리고의 목소리'로도 이해할 수 있는 선택지가 남았다. 
여기서 나는 '이 문제에 대한 답은 독자에게 있다'라는 작가의 목소리가 들린다. 











p147
눈을 깜빡거리면서 그는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거기서 우리는 아무것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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