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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이 Mar 28. 2016

오물 막걸리로 액땜하는 지성

187 막걸리 액땜이라니, 화공과가 아니라 샤머니즘이라도 연구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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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 무슨 인간성의 상실인가

부산의 한 대학교의 화공과 학회, 축구 동아리, 
물론 이미 그 학교의 이니셜이 ㄷㅇ라는 것쯤이야 인터넷에서 이미 밝혀졌다.



시대의 고민은 커녕 불찰에 대한 '반성'조차 불가능한 과 회장과 부회장의 글. 페이스북에 올리니 그 무게가 심히 하늘로 날아갈 듯 굉장하다. 

이런 류의 행태는  액땜을 가장한 학대를 벌이며 느낀 카타르시스가 변태적인 '악습'으로 남아버린 것이다. 일종의 필요악으로 남은 학대가 액땜이라니... 화학공학과가 샤머니즘이라도 연구하고 있나?






못된 것만 남아버린 동아리의 고사현장에 신입생들이 참여를 거절할 수 있었을까. 어떤 바보가 그걸 곧이 곧대로 받아들일런지는 모르겠다. 


대학생 정도의 지성... 이들에게 지성이 있을리 만무하니 지적능력이라는게 있다면 그들 스스로 수호하고 지켜야 할 강의실에서 사람에게 술을 뿌리는 행위가 어떻게 가능하냔 말이다.

심지어 술에 온갖 음식물 찌꺼기를 넣었다니 가히 변태적인 행위다. 이런 행위가 오랫동안 그들 공동체에 머물러 있었다니 도대체 그 동아리에는 정상적인 생각을 할 줄 아는 사람들이 아무도 없었다는 말인가? 공동체의 무지와 멍청함을 저런 식으로 유지하고 있었다는 게 참신할 정도다.


`70, `80년대 공장 철수와 영희들도 저 강의실의 무지한 대학생들보다 진지했으리라 확신한다. 도대체 뭐라고 꼬집어야 저들의 카오스, 저들이 일으키는 사고의 카오스를 잠재울지 모를 지경이다. 이해가 안될 뿐이다.


시대가 지나면 발전하고 성장해야 하는데, 2000년대의 내 대학생활보다 야만적으로 변했다. 야성은 잃고 야만만 늘어났다. 저 사건에서 찾을 수 밖에 없는 '강제'와 '오해'를 이해하지 못하는 변명문은 더 놀라울 따름이다. 



"컨디션이 좋지 않은 학우는 제외했습니다."
"상처를 받았을... "


이런 경우에는 신입생과 학부모들 보다는 학교와 과라는 공동체가 상처를 받는다. 그안에서 문제를 일으킨 당사자들은 이럴땐 착실하게 침묵으로, 무명인으로 일관하니 특별히 상처받을리 없고, 모멸감을 느껴야할 신입생들도 선배들 걱정하느라 결국엔 문제를 감싸안는 일종의 공범이 될 수 밖에 없다. 


자신의 모멸감을 드러내놓고 따지거나 문제를 논하기라도 하면 '지밖에 모르는' 그런 사람이 될텐데 피해자들은 착한 피해자로 남을 수 밖에 없다. 무슨 성인처럼. 아마 선배들도 학교도 교수들도 그런 성인 시늉을 하는 신입생들을 기대할 것이다.


성신여대 + 나 의원 + 이병우 교수의 사건을 생각만 해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보다 높은 권력과 집단을 옹호하는 조직논리, 권력주의. 



학회의 창설을 기념하는 액땜이라고 한다. 
대학 학과의 학회가 액땜을 걱정해야 할 수준이라면 애초에 만들지 말았어야 할 학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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