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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이 Apr 06. 2016

책은 책을 부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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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자나 지식에 대한 중독을 앓는 사람은 아니지만 요즘 책을 근저에 두어야 좋다.

책이 없어 불편하다거나 허전한 것이 아니라 그냥 손이 닿을 만한 곳에 책이 있으니 좋은 것이다. 걔중에는 읽기 어려운 정치사상가의 산문집도 있고 잡지처럼 나오는 추리문예지도 있으며 어린이용 전래동화도 있다. 다시 볼 생각으로 가방 안에 넣어둔 <쥐>라는 만화책도 있다.


책이 책을 부른다.
몸이 술을 기뻐하는 체질은 못되어서 잘 이해가 안되지만 '술이 술을 부른다'는 유혹이 이런 것일지 모른다. 혹은 음식이 음식을 부르는, 예컨대 맵고 짠 음식 뒤엔 단 음식이, 단 음식 뒤엔 청량한 음식을 찾게 되는 것일런지도.


얼마 전 좋아하는 배우와 감독이 영화화 한다기에 원작되는 <침묵>을 읽고는 같은 작가의 책인 <바다와 독약>에 이어 <깊은 강>까지 읽게 되었다. 엔도 슈사쿠의 <깊은 강>을 읽고 나서는 작품 속에 소개되는 소설인 프랑수아 모리아크의 <테레즈 데케루>까지 읽게 되었다. 그 시작이 책이 아니라 영화이긴 했으나 대개의 사람들이 잘 모르고 나도 잘 모르던 다른 세권까지 징검다리 뛰듯 읽게 된건 순전히 책이 책을 이어준 때문이 아니었을까.


책과 책이 이어지는 고리는 삼국지와 크리스티 추리소설에서 처음 발견한것 같다.
아버지가 사다주신 겨우 세권짜리 <어린이 삼국지>를 읽고는 용감하게 <이문열 삼국지>를 읽었다. 그리고는 <수호지>, <사기>와 <십팔사략>을 읽은 기억이 있다.
크리스티 추리소설은 마을문고의 <쥐덫>으로 시작해 이제 대여섯권만 읽으면 전집도 끝이난다. 이 얼마나 오래 걸린 사투(?)였는지... 워낙 오랫동안 읽은 이유로 사 읽은 것을 다시 사기도 하고, 읽었는데 범인이 기억나지 않는 책도 있다. 물론 '기억'이 아니라 '완주'에 의의가 있으니 여부만이 중요하다. 하하!




장하준, 한병철, 찬호께이, 한강 같은 한 작가들의 책을 연달아 읽게 되는 것이나 찬호께이-시마다 소지- 란포-조세핀 테이 같은 추리소설 작가가 이어진 것은 술이 술을 부르는 것과 같다 할 일이다. 반면에 소설을 읽다 철학서를 읽고는 만화책으로 넘어가는 것은 매운맛과 단맛, 치킨을 먹은 뒤 사이다를 마시는 것과 같지 않을까. 하하하하



제목이나 저자(혹은 출판사)로는 관련없는 책들이 책장에 제멋대로 꽂혀있더라도 그게 제멋대로가 아닌 것을 아는 사람은 나뿐이라는 것에 책상 스탠드 아래서 슬며시 기분이 좋아진다.

개천위에 서로 떨어져 있는 바위들에 '징검다리'라는 이름을 붙인 사람이 내가 된 것 같은 기분이랄까.



이럴때만은 조용히 혼자 쉬어야만 다음의 혼돈을 마주할 수 있는 생각많은 나에 만족할 수 있다. 내가 혼자인 것을 외로운 것이 아닌 편한것으로 받아들이기에 독서도 가능한 것이니 말이다.



독일 평론가 라이히 라니츠키의 자서전인 <나의 인생>을 읽고는 하인리히 뵐과 귄터 그라스의 책을 한권씩 읽기도 했다. 그게 일년 정도 전인데 귄터 그라스의 다른 책을 보름 전인가 서점에서 집어들고 왔다. 책이 책을 부른다는 생각에 기억을 뽑아보니 그 장력이 꽤나 길다는 것도 알게 된다. 바로는 아니되 꽤 긴 시간을 사이에 두고도 마치 약속처럼, 혹은 빈자리의 허전함으로 잊지 않는다.
허전하다는 표현이 맞는것 같다.
어차치 독서야 스스로의 시간이니 재촉 당할 것도 마음 졸일 것도 아닌 고로, 그저어 허전한 기분.
여름이 되면 평양냉면이 당기고 겨울이 되면 동치미 국수가 생각나는듯한 그런 기분.




어제 낮에는, 힘이 쭉 빠지고 해 넘어가듯 고개도 넘어가길래 신청해둔 북클럽에서 책을 골랐다. 전집에서 고르는 세권으로 보르헤스의 <픽션들> 아이리스 머독의 <바다여, 바다여 1> 로버트 쿠버의 <요술 부지깽이>를 신청했다. <바다여, 바다여> 1, 2권을 구하고 싶었는데 2권이 11,000원인 가격제한보다 1,000원 비싸 보기에 없는 이유로 절반짜리가 되었다.

세권을 끌어당긴 책은 특별히 떠오르지 않는다. <픽션들>은 비밀독서단에 나오길래 골랐을 테고 나머지 두권은 고민과 검색을 통해 골랐다. 이 책들이 내게 좋은 책, 나에게 개인적으로 의미있는 책이 된다면 아마 다른 책들을 부르고 당겨주게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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