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열이 Apr 10. 2016

한국이 싫어서, 장강명

200, 16-49 조국은 나를 사랑하는가.



p179
걔 공무원 시험 합격 못해. 이제는 9급 공무원 시험도 고시급이라는데 걔가 그 정도로 밤 새워 공부하고 그러지 않잖아. 그거 합격할 노력이면 호주 영주권 쉽게 딴다. 그리고 호주에서 웨이트리스로 일하는 게 한국에서 동사무소에서 일하는 것보다 나쁘지 않을걸?


이 책에는 두 가지 술이 있는데, 
하나는 주인공인 계나가 좋아하는 술, 그리고 잘 읽히는 술술술이 있다. 

나와 비슷한 나이의 주인공이 
내가 했고 내가 하는 고민을 일상적인 단어들로 꾸밈없이 이야기하고 있다.
한국이 왜 싫은지, 왜 떠나야 하는 곳인지, 그럴 수밖에 없는 이야기를 설득력있게.


그러나 기성세대에게는 꽤나 무례할 수 있는 생각이라고, 그런 책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감히 '조국이 싫다니'





<한국이 싫어서>


제목에서 말하는 건 사실 '조국'도 '민족'도 아닌 '한국'이라는 사회다. 바다 건너 나라의 아르바이트만도 못하는 공무원을 하기 위해 죽도록 노력해야하고, 죽도록 공부해서 대학엘 가도 돈으로 만들어진 금자탑을 상아탑으로 극복하지 못하는 사회. 

주인공인 계나가 남자친구의 가족을 만나고 남자친구에게 자괴감에 던진 말이 있다. 내가 교수 아버지를 두고 강남에서 과외, 학원을 다니며 공부한 너만큼 했으면 더 좋은 학교에 갈 수 있었을거라고. 계나의 한이 담긴 그 말을 나는 결코 입밖으로 뱉어낸 적은 없지만 내 말이었다. 

대학에 들어가니 강남에서 외국어 전형으로 입학한 동기들이 있었고 그중 몇몇은 일년지나 어학연수를 떠났다. 갑자기 늘어난 원어수업에서 그네들과는 애초에 상대가 되지 않는다 말하는 것은 패배자같고 그놈의 노력을 게을리한 불성실한 놈처럼 비춰질까봐 더 조용히 있었다. 사실 극복할 수 없는 비교질은 밑빠진 독에 물붓기요 막다른 골목이니 차라리 노력탓을 하는게 희망적일 수도 있으리라.



그런 비정상적인 희망이나마 끌어안고 살 수 밖에 없는 절망이 계나를 호주로 날아가게 했고 행복은 한국보다 호주에서 찾기 쉽다고 생각하게 만들었을게다. 호주에서 외국인으로서는 큰 위기를 두번이나 겪었지만 말이다. 그러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보다는 호주라는 확정.



p171
애국가 가사 알지? 거기서 뭐라고 해? 하는미이 보우하는 건 내가 아니라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야, 만세를 누리는 것도 내가 아니라 대한민국이고, 나는 그 나라를 길이 보전하기 위해 있는 사람이야. 호주 국가는 안 그래. 호주 국가는 "호주 사람들이여, 기뻐하세요. 우리들은 젊고 자유로우니까요."라고 시작해. 그리고 "우리는 빛나는 남십자성 아래서 마음과 손을 모아 일한다."고, "끝없는 땅을 나눠 가진다."고 해. 가사가 비교가 안 돼.


앞서 읽은 그람시의 <나는 무관심을 증오한다>에서는 국민에게 일자리를 위해 외국으로 떠나라는 이탈리아 정부의 홍보에 대해 '자국민도 먹이지(책임지지) 못하는 정부와 자본주의의 무능'의 반증임을 말한다. 우리나라도 얼마전부터 해외 취업을 청년들에게 적극 권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일자리를 만들어 줄수 없고 먹고 사는 일을 도울 수 없으니 생존은 다른 나라에서 하라는 것이다. 


p170
내가 형편이 어려워서 사람 도리를 못하게 되면 나라가 나를 도와주는 게 아니라 내가 국가의 명예를 걱정해야 한다는 식이지. […] 그런 주제에 이 나라는 우리한테 은근히 협박도 많이 했어, 폭탄을 가슴에 품고 북한군 탱크 아래로 들어간 학도병이나, 중동전쟁 나니까 이스라엘로 모인 유대인 이야기를... 




시원시원하고 통쾌한 말이지만 통쾌하고 시원한 기분이 들게 만드는 배경되시는 사회의 벽은 높기만 하고 오늘의 서울하늘처럼 빡빡하기만 하다. 




그나저나 표지디자인이나 두께감, 재질이 참 마음에 든다.



책에서 읽은 계나의 목소리처럼 이 책은 굉장히 직설적이고 민낯 그 자체를 보여준다. 그래서 쉽고 재미있게 빠르게 읽혔을 거다. 주인공이 여성인 동시에 한국적 남성상에 대한 비판을 가하지만 남자인 내가 느끼기에 그렇게 반감스럽진 않았다. 쉽게 발견할 수 있는 평균적인 일상의 모습인데다 계나가 여성만을 대변하진 않으니까. 계나의 가족이나 친구들, 남자친구였던 지명의 가족들을 통해 볼 수 있는 모습들이 불편하고 비겁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것도 사실이니 어쩔 수 없다. 절망스런 희망이나마 부여잡고 사는 사람들의 일상, 그러니까 내 일상도 그렇지 않다고 할 수 없으니.



마지막으로 이 책을 정리한다면, 
쉽고 재미있다. 그리고 현실적이면서 사실적이다. 
과장된 희망(예컨대 <피에로들의 집>에서 느꼈던)을 제시하지도 않는다.

그러면서도 아쉬운 것은 이 책을 읽으며 성석제 작가가 생각났다는 것인데, 장강명 작가는 뼈를 너무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골계미, 말속의 뼈, 해학 가운데서도 현실의 비애를 서글프게 느끼게 만들고 어루만지는 것이 아마도 성석제 작가의 '깊이'일텐데, 장강명 작가의 방식은 꼬집는다. 사회의 비극과 비정상을 꼬집으니 시원하고 통쾌하지만 그게 여운으로 남을지에 대해서는... 확실하지 않다.

물론 이런 생각은 내 편견일 수도 있겠지.



내딴에 '깊이와 여운'을 논했지만 소설의 가장 큰 미덕은 재미라는데에 있고 이 <한국이 싫어서>는 그 정도는 충분히 만족시켜준다. 성석제 작가와의 비교는 괜한 심술일 수도 있다. 
이런 본격 사회파 작가를 만나기가 쉽지 않은데 불평이라니... 



그런데... 사회파 작가치고는 책에 담긴 장강명 작가의 사진이 너무 평화롭다. 형이라고 부를게요~ 강명이 횽~






장강명 작가의 소설은 이게 처음인데 사람들이 추천해마지 않는 <댓글부대>도 읽게 될것을 다짐합니다. 괜히 사회부 기자가 아니'시'다(??????).

p.s. 책 많이 읽는 이웃님이 '애정'하는 이유를 알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는 무관심을 증오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