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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이 Apr 18. 2016

빌라도는 과연 죄인인가

빌라도에게 고난받은 예수 그리스도?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거룩한 공교회와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 받는 것과몸의 부활과영생을 믿습니다아멘.




개신교 교회에서 읊는 사도신경이다. 

옛 문체를 바꿔 현대어로 바꾼 사도신경으로 고전적인 사도신경에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라고 되어있다.




+ 정치인 빌라도의 선택 


사실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정치인 빌라도'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심각한 어폐다. 


구원사적으로 볼 때 <빌라도의 선택>은 필수적인 일이었다. 유대인들의 제사에서 어린양의 피를 모두 흘려보내는 그 의식을 그대로 본딴 구원자의 인신제사는 십자가형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빌라도는 최종 제사까지 이르는 과정 속에서 하나의 톱니바퀴로서의 역할을 했다. 


단순히 사실로만 따지더라도 정치인이었던 빌라도(Pilate)의 선택은 틀렸다고 볼 수는 없다. 당시 현지 문화를 최대한 수용하고 세금 중심적인 지배체제를 운영했던 로마의 식민정책을 생각할 때 광장에 모인 민의의 선택을 수용한 것을 누가 틀렸다고 할 수 있을까. 


빌라도는 당시 로마 중앙 정치와 유대인 정치(제사장들) 사이에서 중심을 유지하려고 했다. 그리고 재판 과정에서 무고한 예수 그리스도를 계속 치려는 유대인 권력자들 앞에서 머뭇거리는 모습을 통해 그리스도의 무고함, 순결함을 반증하기까지 했다. 






+ 착한 빌라도


사실 이러한 '착한 빌라도'에 대해서는 여러 영화에서 다뤘다. 멜 깁슨이 감독한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를 보면 그리스도의 고난에 대한 잔학성은 빌라도보다는 유대인들에게서 비롯됐다. 그리스도의 뺨을 치고 침을 뱉어 신성을 모독한 것은 빌라도가 아니라 유대인들이었다. 



정치인의 선택은 정치적일 수밖에 없는데, 결과론적 입장도 배제한 채 사도신경과 오늘 현대 교회는 '정치적'이라는 말에 굉장한 악의를 담는다. 


빌라도가 정치적인 이득을 위해 무고함을 져버리고 대중의 잘못된 선택을 따르는 우를 범했다는 것이다. 빌라도로서는 유대인의 운명을 유대인들의 손에 맡긴 것이 불법도 독재도 우유부단함도 아니었다. 자신이 옳고 그름을 선택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최후의 방법이었을 뿐이다. 


어쩌면 오늘날의 민주주의의 방법과도 크게 다르지 않은데 종교인들, 특히 목회자들은 비겁함이나 우유부단함으로 몰고간다. 그러나 빌라도가 유대인의 목숨을 하찮게 생각한다거나 '유대인'이라는 피지배 집단을 가볍게 생각했다면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고민따위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정치인 빌라도는 우유부단하다거나 정치적 손익 계산에 밝은 사람이라기 보다는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이해하려 노력했을 뿐이다. 





+ 빌라도는 벌을 받았을까?


빌라도의 이후 인생에 대한 '썰'은 다양하다. 


01 - 정치싸움에 패해 A.D.37년에 로마 황제 네로에 의해 처형당했다 설,

02 - 간밤에 예수그리스도의 꿈을 꿀 정도로 영감있던 부인과 그리스도교로 개종했다는 설,

03 - 구원자에의 죄책감으로 자살했다는 설.


가장 정확한 것은 빌라도의 이후 행적은 묘연하다는 것. 정확한 것이 없다.



그러나 이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라며 그를 탓하는 사도신경을 매주 주문처럼 외우는 기독교인들은 빌라도의 이후를 단지 비관하고 비판적으로 알고 있을 것이다. 그리스도가 십자가형을 언도한 그가 잘 될리 없다는 것이다. 이런 사고방식은 기복신앙(祈福信仰)의 논리 그대로인 기벌신앙(祈罰信仰)이다. 



그런데 말입니다.

 빌라도의 결말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 그러면 사도신경은?


사도신경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다. 


기독교 교리의의에 의해 A.D.150년경 <로마신조>를 본따 325년 니케아 회의가 대표하는 4~5세기의 다양한 기독교 회의에 의해 결정된 기도문이다. 


성경의 교리를 정리한 것이지만 성경의 권위와는 다른 차원의 것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지금껏 많은 사람들이 빌라도를 탓하는 게 분명한 이 부분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을 끊임없이 지적해 왔지만 교회 사역의 최전선에서 사역하는 일반목회자들은 이 의문점에 대하여 어떤 설명도 하지 않는다.


누구도 잘못된 것일 수도 있는 사도신경의 권위에 도전해 '이단'이라는 의심을 받기 싫은 것이다. 빌라도에게 깊이 박혀 이젠 빠지기 어려운 미운털을 아무도 뽑지 않는 것이다.







+ 보다 정확한 빌라도에의 시선


나 어릴 적 어떤 전도사 목사들은 빌라도가 나쁜 것처럼, 무조건 그의 실정인것처럼 말하는 사람이 거의 전부였다. 빌라도의 이 고민은 철학적인 관점에서 굳이 헤집어 본다면 햄릿의 'to be or not to be'의 급과 비견될 만한 것인데도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돌을 던질 뿐이다. 



기독교는 언어, 글자의 종교다.

어떤 목사나 예언자나 심지어 초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성경의 텍스트를 번복하거나 지적하거나 반대할 수 없는 것이 기독교다. 


그런데 그런 기독교에서 매주 읊을 정도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도신경에 갸우뚱한 내용이 담겨있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틀릴 수도 있는, 최소한으로 생각해도 사실과 다를 수 있는 내용이 한 사람을 향해 편협하고 악의적으로 적혀있다. 






마지막으로 흥미를 자극하는 스토리를 위해 악의적 혹은 권위적으로 그려진 앤드류 로이드 웨버, 팀 라이스의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에서의 빌라도(Pilate)의 모습. 

2000년도 버전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G0CgVGrn-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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