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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이 May 25. 2016

228 강남역 살인사건, 혐오와 원한

여자라서 살해당했다는 말은 남자라서 군대간다와 뉘앙스가 다르지 않다.

원한이라는 말이 혐오라는 말로 변했다는데 있다.

이 남자의 원한은 경험에서 비롯된 것인데 사람들은 '태초에'나 어울릴 법한 혐오라는 단어를 붙였다. 확장되었다.  

혐오는 대체로 이유없는 것에서 기인하는 미움에 쓰는 단어다. 

때로는 맹목적인 미움. 물론 그 원한을 이유없는 사람에게 풀었으니 그 사람 개인에게는 혐오라는 말이 어울릴지 모르겠다. 그런데 그것을 사회적인 혐오라는 논의로 끌어들이는 것은 문제다. 그의 범죄는 사회적인 혐오가 아니라 개인적인 원한이며 잘 봐준다 쳐도 여성에 대한 개인적 혐오로 비화된 것이다. 


나는 아직도 혐오범죄라고 열을 내는 사람들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건 원한으로 인한 비정상인의 범죄였다. 여기에 몇마디 더하면 나는 아직도 가방을 원하는 여자와 가방을 사주는 남자, 밥값을 내지 않는 여자와 밥값을 내는 남자들을 알고 있다. 집을 사는 남자와 결혼식 혼수를 대는 여자를 알고 있다.


남존여비의 파편이 사회에 아직 남아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남성 부담의 파편도 남아있다.



여전히 유효한 성에 대한 양극화를 논해야지 혐오만을 논해서는 안된다. 



특히 군 복무가 아닌 군 복무 면제를 여성의 권리로 착각하는 급진적이며 한국적인 여성주의가 존재하는 한 더더욱 혐오로 호도해선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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